▲ 오감만족 커피를 맛있는 기사로 녹이고 있는 이인희 기자의 모습

 

  어느새 커피 중독자가 돼 버렸다.     

 

  백지상태에서 커서만 깜빡이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성큼 다가오는 마감시간의 소름을 느끼다 보면 바로 옆에 높인 한 잔의 커피가 잠깐 쉬어가라 손짓한다.

 

  숨 가쁘게 보내는 하루가 보람인줄 알았는데 문장 중간의 쉼표 하나가 읽는 이의 여유를 찾아주 듯 나의 여유를 찾아준 커피의 고마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인희 기자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기 전 한때는 조그마한 카페의 바리스타로 일하며 창업의 꿈을 꾸기도 했다.

 

  잔에서 피어오르는 향을 기준으로 마주앉아 허물없이 대화하며 상대방의 세상을 배우는 그 시간이 좋았기 때문에 커피를 배웠고, 커피에 빠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는 취재원을 마주하고 있지만, 지금도 나를 찾는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커피를 권한다. 그건 나와의 교감을 시작하자는 ‘신호’와 같은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세상을 알려주던 커피가 어느 날은 문득 입술에 닿는 촉감이 다르게 다가왔다.

 

  생각해보니 종이나 캔에 담긴 커피가 아닌 얇은 자기 잔에 담긴 커피였다. 입술에 닿는 커피 잔의 촉감을 무시하고 산 셈이다.

 

  떠올려 보면 내가 열심히 내렸던 커피는 가장 예쁜 잔을 찾아 향이 깨져버릴까 조심스레 담고 받침대에 올려 내주었다.

 

  촉각, 시각, 후각, 미각, 청각 5감을 만족시키는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쏟았던 정성이 편리하니 서로 양해하자는 무언의 약속으로 언젠가 뒷전이 돼버렸다.

 

  그렇게 내 스스로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꾸 편리한 쪽으로 변한다.

 

  오랜 취재 과정에 이어 쉼표 하나의 위치까지도 신경써가며 쓰던 나만의 기사가 아닌, 눈만 돌리면 찾을 수 있는 ‘자판기 커피’ 같은 기사를 추구해 버린다.

 

  단신 한 줄에도 온 집중을 다해 몇 번이고 다듬던 열정이나 정성이 종이컵에 담긴 커피마냥 식어버렸음을 느낀다.

 

  약자의 목소리에 확성기를 달아주겠다던, 독자의 입맛을 사로잡겠다던 기자 첫 날의 포부가 부끄럽게 떠오른다.

 

  다 식은 커피를 한 입에 털어 넣는다. 희미해져버린 향과 텁텁한 목 넘김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정성이 안 담긴 내 기사도 이렇게 텁텁한 맛이겠지’라는 생각에 ‘맛있는’ 기사를 쓰려고 자세부터 바로잡는다.

 

  커피를 내리고, 그 향이 깨져버릴까 조심스레 잔에 담던 그 정성과 열정을 잊지 말라는 커피의 가르침에 한 번 더 고개가 숙여진다. 커피로부터 기자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