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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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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31  01: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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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일보 김대욱 기자와 아들 성중이가 함께 잠들고 있는 모습.
 적당히 추웠던 겨울날, 퇴근길이었다.

벨소리가 울리는 휴대전화에는 아내 이름이 떠있었다. 냉큼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이 시간에 전화를 할 때면 저녁 찬거리를 사 오라는 게 대부분인데, 어째 수화기 너머로는 말이 없었다. 분위기는 고요했고, 제법 무게감이 있었다.
 
나는 연신 아내 이름을 불렀다. 묵묵부답이었다. 문득 집에 사고라도 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30초쯤 지났을까. 초조함이 극에 달했을 즈음, 답변이 돌아왔다.
 
"아퐈아?"
 
아들이었다. 태어난 지 15개월이 갓 지났을 무렵이었다. 녀석은 아내의 휴대전화를 갖고 놀다 무심코 통화버튼을 눌렀고, 나는 그 전화를 받았다. 아들은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아퐈아?"라는 말로 화답했다. 물론, '아파?'의 뜻이 아닌 '아빠'를 발음한 소리였다.
 
이후 1분여간 아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뭐하고 놀았어요?"라는 나의 질문에 아들은 "아퐈아?"라고 말했고, "점심은 뭘 먹었어요?"라는 질문에도 "아퐈아?"라고 답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엄마 예쁘지?"라는 말에는 "응?"이라고 정확히 발음했던 것 같다.
 
통화시간은 1분 42초. 온전히 아들과의 대화로만 채운 통화는 처음이었다. 부자는 각기 다른 질문과 답으로 이야길 나눴지만, 집에 도착하기까지 한참이나 뭉클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전화를 했는지 조차 모르는 표정으로 퇴근을 반겨주던 모습도 생각난다. 행복한 대화였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었는데, 이른 아침 서둘러 집을 나선 날이면 그토록 아빠를 찾는다고 했다. 아퐈아? 아퐈아? 거리면서 말이다. 나는 잘 몰랐다. 유난히 뽀뽀를 안 해주길래 벌써부터 부자 사이가 어색해진 것 아닌가도 생각했다.
어느 날은 아내에게 아들이 '아빠'의 뜻을 잘못 인지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농담을 던졌는데, 아내는 "그럴 수도…."라고 말끝을 흐렸다.
 
돌아보면 0점짜리 아빠였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은 술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턱수염을 비볐고, 저녁 약속이 없는 날에는 소파에 누워 배나 긁적이고 휴대전화만 봤다. 아내도 꽤나 속을 썩었을 테다. 아빠는 본래 그런 건 줄 알았다.
 
나름 의식이 있고, 제법 가정적인 아빠인 줄 착각하고 살았다. 말만 앞섰다. 이 자릴 빌려 사죄한다.
 
아들은 계속 성장할 테다. 그리고 아빠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 눈 앞의 보이는 것들부터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에 대해서 물어보고 답해야 할 것이다. 나도 준비를 해야겠다. 여전히 모르는 게 투성인 세상에서 그나마 답에 가까운 생각을 찾고, 그것을 설명하려면.
 
그날의 통화를 떠올리며, 아무런 의미와 기준 없이도 대화가 오갈 수 있게. 아빠의 역할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본래 아들 자랑 좀 해보려고 시작한 글이었는데, 어째 잘못한 일을 동네방네 알리는 것 같은 느낌은 기분 탓일 거다. 기분 탓이다.

- 대전일보 김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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