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bs보도물

 #뭘 쓸까짧게는 매일 길게는 매년. 때로 때꺼리로 때로 기획으로. 짬밥을 먹어도 고민은 항상 새롭다.
20년차 기자는 뭘 쓸까 또 뭘 써야 할까. 아무 생각 없이 술만 먹은 세월이 아니었다면 연차에 걸맞은 기사를 써야 할 텐데. 생각하지 않는 것도 죄라고 하지 않았던가. 2016년 ▲환경화약고 충남서북부를 비롯해 ▲4차 산업, 대체 뭐길래(2017년) ▲동네문제부터 사회변혁까지 리빙랩(2018년) ▲기본소득 알아보기(2019년) 등의 기획들은 이런 생각에서 시작됐다. 사실 17년 이 후 기획들은 같은 흐름 속에 있다. 기획 속 기획인 셈.
공들인 만큼 애정도 깊다. 협회보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을 정도로. 이런 건 20년이고 뭐고 필요 없더라.

#왜 쓸까이 기사를 왜 써야 할까. 혹은 누구를 위한 기사인가. 몇 년 전 찾아온 질문은 지금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비판이든 의견 개진이든 미담이든 기사에는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가끔은 별 생각 없이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때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기사를 쓸 때도 있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든가 기사를 위한 기사들이 그렇다. 클릭수를 위한 제목 장사 혹은 아집에 사로잡힌 나를 위한 기사도 있었다. 최근 코로나19 보도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저 기사를 왜 썼을까. 꼭 필요한 기사였을까. ‘내가 이 기사를 왜 쓰고 있는 거지?’ 라는 자문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곤 한다.

#어떻게 쓸까 게이트키핑의 시작은 데스크 이전에 기자 본인이다. 당연히 기자의 가치관이 기준일 수밖에 없다. 쓸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 기자들의 가치관은 중요하다. 그런데 가치관이라는 게 영원불변일 수는 없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혹은 새로운 배움과 깨달음을 얻었을 때는 가치관도 바뀔 수 있다. 자기애(愛)가 지나치게 지나친 사람이거나 ‘입사=공부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내 가치관은 어떨까. 기자로서 타당한가. 그것도 20년차 기자로서 말이다. 같은 사안도 기사 방향은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이왕이면 현상만 전하기보다 분석이라든지 좀 더 깊숙하고 날카롭고 스펙트럼이 넓은, 그래서 20년의 연륜이 묻어나는 기사를 써야 하지 않을까. 남들 쓰는 대로 쓰면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그런 기사는 내가 안 써도 다른 사람이 쓴다. 남들 다 쓰는 기사에 많은 시간 들이지 말자. 포털 검색에서 제목이 비슷한 기사들은 우리도 거르지 않나. 말이 살짝 옆으로 샜는데, 아무튼 깊고 넓은 기사를 쓰기 위한 기자들의 가치관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항상 조심하고 언제나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재미없고 딱딱한 뻔한 게 결론이고.

#뭘 안 쓸까몇 년 전부터는 뭘 쓸까의 고민에 뭘 안 쓸까의 고민이 더해졌다. 꼭 써야 할 기사,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기사, 쓰면 안 되는 기사들 중에서 안 써도 되거나 쓰면 안 되는 기사에 대한 고민인 셈이다. 물론 쓰는 것이 기자의 사명이다. 하지만 때로는 쓰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왜 쓸까’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인데, 코로나19 보도를 예로 들자면 어떤 기사들은 안 써도 되는 혹은 써서는 안 되는 경우들이 있었다.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사람 편가르는데 이용하거나 본인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트집 잡기식 접근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때로 쓰지 않는 것도 기자의 게이트키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게 쉬운 건 아니다. 그래서 쓰는 것보다 안 쓰는 게 더 어려울 때가 많다.

#에필로그20년차라는 게 별것은 아니다. 하지만 20년 동안 현장을 떠나지 않고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건 단연코 행운이다. 이런 행운을 이왕이면 좀 더 멋지고 보람되게 보내고 싶다는 말이 길어졌다. 모두들 건승하시길.

cbs 신석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