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에 너무 심취했었나?' 장면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어떤 꿈'에서 깨어난 새벽, 혼자 피식 웃었습니다. 촬영기자를 기다리면서 영등포경찰서 기자실에서 잠깐 눈을 붙였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제가 대전KBS 보도국 책상에 앉아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도민준 급' 순간 이동이었죠. "빛이라야, 너 오늘 대전 와도 되는 날이냐?" "야. 너 한번 올 줄 알았어!" 그리웠던 선배들이 인사를 건네셨고, 일단 반가운 마음에 "네 선배, 어쩌다 보니 와 있어요. 그런데 저 오늘 분명 취재가 있는데..", 그때, "어딘데 취재를 아직도 안가고 있냐?" 서울에서 걸려온 캡의 전화,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정신차려보니 꿈이었더라고요. 취재를 펑크내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꿈에 나온 대전 보도국, 선후배들의 모습이 생생해 대전에 계신 모 선배께 연락해 꿈 이야기를 실컷 늘어놨습니다. 선배 왈, "그러니까 대전으로 얼른 다시 와!" 내심 감사했습니다. 언제든 반겨주실 선, 후배가 있는 정든 대전 보도국 생활을 잠시 되돌아봅니다.

대전 근무를 가기 전, 제 기억 속 대전은 '엑스포와 카이스트'의 도시, 그 뿐이었습니다. 고향도 아니고, 며칠 여행 가본 적도 없는 곳. 대전 뿐 아니라 충남 지역 어느 곳도 하루이상 머물러 본 적이 없어 마냥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초년병 사건기자가 거리낌 없이 바닥부터 취재할 수 있는 근무지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겁없던 제게, 대전과 충남은 예상보다 더 ‘스펙타클’한 지역이었습니다. 여름엔 해안가에서 폭풍을 온몸으로 맞았고, 가을엔 4대강 수문 앞에 줄지어 떠오르는 폐사된 물고기들과 허우적댔고, 각종 지역단체 비리들은 연이어 터졌습니다. 해를 넘겨서는 프로스포츠와 지역 체육까지 맡게 돼 절 설레게 했지만, ‘꼴찌’를 면치 못한 한화이글스와 대전시티즌이 결국 끝까지 속을 태웠습니다. (스포츠가 시민들에게 사건 기사 이상의 스트레스를 안겨줄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1년 6개월,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돌이켜보면 막내 기자가 참 알차게 돌아다녔습니다.

서울 보도국 사회부로 돌아온 지 3개월째. 새로운 취재원들을 만나고 낯선 취재장소에 적응하는 와중에도, 대전 근무 때 친해진 취재원들에게 전화가 오면 정말 반갑습니다. 겉으로는 "곧 서울갈라면서 뭘 또 친해질라 그래유"라며 거리두는 척했던 분들, 때로는 좋은 기사로, 때로는 껄끄러운 기사로 자주 보다보니 이제는 정으로 바뀐 모양입니다. 이젠 얼굴 안 마주치니까 얘기하기 더 편하다며 제보거리를 던져주는 취재원들은 소중한 자산입니다. 대전 선,후배들의 문자 역시 얼마나 감사한지요. 리포트가 나가고 나면 날카로운 평가와 힘이 되는 문자를 연달아 보내주는 오디오맨들과 타사 기자 동료들, 취재현장에서 함께 도와가며 좌충우돌했던 에피소드들을 꺼내면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사람’을 얻는 게 기자에게 얼마나 큰 힘인지 다시 되새깁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대전 충남 곳곳을 여유롭게 느끼지 못했던 점입니다. 근무가 없는 날이면 대청호 드라이브 코스도 운전해보고, 카이스트 앞 단풍나무길도 걸었어야 하는데, ‘잠’만 잤던 휴일들이 이제 와서 아깝게 생각됩니다. 대전을 떠나던 날, 선배들은 "우리 금방 다 잊어버릴걸?" 말씀하셨는데, 이렇게 그리움을 담아 글을 쓰게 되니 제 마음을 알아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대전에서 배우고 얻은 것들을 품고, 얘기되는 리포트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순간이동 하는 꿈을 꾸게 된다면, 꼭 맛있는거 사들고 대전으로 놀러 가겠습니다:)

38기 김빛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