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KBS대전총국의 자칭 히로인(?) 이정은 기자가 돌아왔습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마치고 꼭 1년 3개월만 돌아온 건데요. 이기자의 화려한 컴백이 가능했던 건 엄마를 대신해 육아 부담을 온몸으로 감당하는 낭군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YTN 이문석 기자죠. YTN 창사 이래 남자 기자의 육아 휴직 신청은 사실상(?) 처음이었다고 하는데요. 많은 무리와 파장을 일으킨 만큼, 이문석 기자는 누구보다 훌륭히 부모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육아의 고통이란 게 참~ 말처럼 쉬운 게 아니죠.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문석 기자의 육아기, 즐감하시고 협회원이면서도 협회원이 아닌 이문석 기자에게 힘찬 격려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루리아빠 육아기>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아무리 안아주고 달래도 루리는 계속 울었다. 깜깜한 새벽. 시계를 볼 겨를도 없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좁은 호텔 방에서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안은 채 나는 둘이서만 사이판에 온 걸 후회하고 있었다. 30분쯤 지났을까. 다행히 루리는 잠이 들었다. 나는 다시 잠들기 어려웠다. 머리 속이 복잡했다. 아침이 밝으면 당장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렵게 결심하고 온 건데 이대로 갈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다행히 그 선택은 옳았다. 루리는 더 이상 밤에 서럽게 울지 않았고 물놀이와 모래놀이에 지쳐 단잠을 잤다 . 내가 사이판에 왔다고 실감한 것도 바로 그때 즈음 이었다. 맙소사! 내가 루리와 단 둘이 해외여행을 하다니. 정은이한테는 자신있다고 큰소리쳤지만 사실 두려움이 더 컸다. 육아휴직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나는 고생길이 뻔한 여행길에 올랐다. 이왕 고생하는 거 에메랄드 빛 바다 선베드에서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원래는 4박 5일 일정. '효녀' 루리가 도와준 덕분에 나는 현지서 이틀을 더 늘려 7일 동안 겨울을 피해 있었다. 미친 짓이라고 말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충분히 견딜 만했다. 물론 힘들었지만 나중에 루리가 컸을 때 두고두고 자랑할 거리가 생겼다.

육아휴직 얘기도 해보겠다. 내가 육아휴직을 내겠다고 밝히자 경험자와 무경험자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남자 기자들은 물론이고 육아휴직 경험이 없는 여기자들은 "부럽다.",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육아휴직 경험이 있는 '엄마기자들'은 달랐다. "힘들겠지만 보람있을 거다.", "큰 결심했다." 이랬다. 나는 '종일육아' 하루 만에 반응이 왜 이렇게 달랐는지 깨달았다. 돌쟁이 아기를 오롯이 나 혼자서 책임지는 것.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던 시절, 와이프 없이도 문제 없이 몇 시간을 보냈던 나였지만 하루를 꼬박 혼자 아이를 보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각오는 했었지만 현실은 또 달랐다. 많은 임산부들이 출산 뒤 우울증을 겪는 게 이해 됐다. 먹고 자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가장 개인적이여야 할 '싸는일'조차 나를 빠끔히 바라보는 아이 앞에서 해야했다. 나라는 존재, 존엄성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와이프가 달리 보였다.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어떻냐고? 사실 힘든 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변한 게 있다면 아기 보는 데 아주 조금 더 익숙해진 몸뚱이가 있을 뿐. 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짜증을 내다가도 금세 피어나는 아이의 천만 불짜리 미소를 볼 수 있어서. 무릎에 파스 붙인 걸 아무리 보여줘도 기어이 품에 안겨 붙는 딸의 체온을 느낄 수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루리가 자라는 일 분 일 초를 사진으로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