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한국기자협회보에 실린 ‘김영희’ 대기자의 기자 생활에 대한 양심선언을 읽고 故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이하 전논)를 다시 꺼냈습니다. 4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두 분 모두 베트남 전쟁, 그 역사적 사건에 대해 한 분은 정면으로, 또 다른 한 분은 통한의 후회로 동시대를 살았던 지식인과 언론인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의 저나 우리 후배 기자들에게 피할 수 없는 저널리즘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김영희 대기자는 2014년 4월 2일자 기자협회보의 신문의 날 특별기고를 통해서 “옛날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한다면 무엇을 달리할 것인가?”라고 자문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을 생각 없이 취재 보도했다”며 “양심선언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고문에 명시적으로 나타나있지 않지만 아마도 김 영희 대기자는 베트남 사태와 전쟁을 기사화 할 때 거의 정부나 군에서 주는 자료나 정보에 의존했었음을 고백한 것 같습니다. 출입처에서 주는 보도 자료에 의존하는 현재의 우리 언론과 카피라이터 수준에서 뉴스보도를 하는 기자로서 폐부를 찌르는 아픔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공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기자 생활 은퇴 뒤 나도 이런 부끄러운 고백을 하지 않을까 떨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기자출신으로 70년대에 베트남 전쟁에 정면으로 접근한 리영희 선생의 전논을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30여 년 전 1984년 초 동료의 자취방에서 선배들이 건네준 ‘문건’의 형태로 읽었던 전논-전체가 아닌 베트남 전쟁 ⅠⅡ 복사본-. 당시에는 정치사회적 관점에서 읽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역사적 배경, 전쟁 발발 시점의 동아시아 정치정세, 전쟁 발발 전후 미국의 동향과 역할,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정권과 민중의 움직임 등 . 그것은 군사독재정권의 반공정치선전선동에 ‘브레인 워싱(Brainwashing)’된 상태였던 시골대학생에게도 말 그대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전환을 일으킨 지적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김영희 대기자가 ‘양심선언’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가장 후회된 기자 생활의 기억으로 베트남 전쟁을 꼽았던 만큼, 이 사건을 저널리즘적 관점에서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저널리즘의 근본적 딜레마의 문제인 사실(사건)과 의견(의미)라는 틀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김영희 대기자가 ‘사실(Fact) 뒤의 진실(Truth)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기자에게 요구되는 보도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리영희 선생의 ‘전논 베트남 전쟁 ⅠⅡ’에서 그대로 관철되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구체적인 당시 사건들 속에서 찾아냈으니 말입니다. 또 김영희 대기자는 그 진실에 이르는 길이 비판적인 시각(방법)으로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 점도 역시 리영희 선생의 글의 모든 과정에 녹아있었음을 재확인했습니다.

그러나 리영희 선생이 탁월한 저널리스트라는 것은 기자의 정신자세나 취재보도의 방법론에만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리영희 선생의 전논 베트남 전쟁 ⅠⅡ는 저널리즘의 근본문제인 사실(사건)과 의견(의미)의 관계를 역동적인(변증법적인) 기술방식으로 엮어냈다는 것입니다. 사실과 사건들의 관계에서 특정한 역사 ․ 사회적 관점과 의미를 찾아내고 이를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사실과 사건들을 들춰내고 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역동적인 저널리즘. 즉 저널리즘의 근본적 딜레마를 치밀하고 논리적인 과정을 통해 해결해냄으로써 진실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전논 베트남 전쟁이 Ⅰ편과 Ⅱ편으로 구분된 것은 역사적 관점을 먼저 세우고 그 관점에 따라 현재의 사건들을 선택하고 배치함으로써 현상(전쟁)의 의미와 성격을 차별적으로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Ⅰ편은 베트남의 역사-프랑스 식민지 지배와 베트남 민중의 민족해방운동, 반부패 사회혁명운동의 역사-를 기술했는데, 이는 그 이후 벌어질 베트남과 미국의 전면 전쟁을 바로 보기 위한 ‘관점’입니다. Ⅱ편에서는 이 관점 아래 미국과 남․북 베트남 정권 사이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찾아내고 정치적 맥락에 따라 배치하면서 전쟁의 발발 주체와 성격, 의미 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결국 시간적으로 이미 벌어진 (과거)사건들을 살아 움직이는 (현재의)의미로 되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세계관)이었습니다. 즉 동시대, 동일한 직업에 종사했던 두 분이 서로 입장의 길을 걸었던 것은 사건을 많이 아는 차원이나 방법론(비판주의)의 사용 유무를 넘어선 관점(세계관)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세계관-철학, 역사, 사회과학, 국민과 국가, 민주주의와 언론 등-의 차이가 동일한 대상과 범주에서 서로 다른 사건을, 사람을, 역사를, 의미를 찾아내고 기술토록 이끌었던 것입니다.

전논 5부에서는 ‘직업수필 4題’편이 나옵니다. 리영희 선생이 1971년부터 1972년도까지 한국기자협회보에 기고한 기자와 기자 생활에 대한 글 4편입니다. 글 4편에서 여러 차례 강조하는 것은 기자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갖고 기사를 쓰고 기자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 역사와 사회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부하라고 촉구했습니다. 40여전에 이미 ‘은퇴 이후에 후회하지 않는 기자의 길이란 무엇인가?’를 제시했던 것입니다.

리영희 선생이 한국기자협회보 1972년 9월 8일자 기고문 -미래와의 대결-을 통해 역설한 결론이 현실의 언론환경을 핑계 삼아 나태와 안이함에 빠져있는 저에게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미래와 대결하는 기자에게 새로이 요구되는 것은 첫째는 적어도 권력과 관료보다는 의식이 앞서야 한다는 것과 둘째는 그러기 위해 꾸준한 자기 교양을 통해서 세계관을 넓혀야 하겠다는 절실한 생각이다”

지영한 대전CBS 보도제작국장/ 前 대전충남기자협회장(2005-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