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4년 3월 31일 월요일 밤 10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은 아빠가 공부하느라 늦는 날이다. 늦은 시간, 문 밖까지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빠를 부르며 달려드는 아이들. 두 놈을 번쩍 들어 올리니 늘어졌던 어깨도, 찌푸렸던 얼굴도 활짝 펴진다. 첫째 딸 시윤이가 작은 손으로 잡히지도 않는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고, 조물조물 주물러준다. ‘누나 따라쟁이’ 지후도 덩달아 내 어깨를 두드린다. 어느 새 행복한 ‘아빠 미소’를 짓고 있는 나. 오늘 힘들고 지쳤던 날이었던가? 아! 얼마나 행복한가. 단언컨대 아이들은 축복이다.

#2. 2014년 4월 1일 아침 8시. 새벽 조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곤히 잠들어있는 6살 시윤이와 4살 지후의 옷을 입힌다. 잠에서 깰 때 행여 힘들고 기분 나쁘진 않을까, 잘 되지도 않는 애교와 유머로 아이들을 간지럽힌다. 간신히 눈을 뜬 아이들이 아빠와 첫 눈을 마주치고 슬며시 웃어줄 때, 그때 느끼는 아빠의 만족감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예쁜 내 새끼 볼 살이 미어질 정도로 까칠한 내 얼굴을 갖다 대고 부벼 본다. 잠에서 깬 아이들은 세수 안하겠다고, 이 옷 안입겠다고, 과자 내놓으라고 이리저리 도망다니며 뺀질뺀질. 어르고 달래며 어린이집 가자고 애원을 해도 도통 내 맘대로 척척 진행되는 게 없다.
슬슬 부아가 치민다. 이것들을 그냥!!!

#3. 2014년 4월 1일 저녁. 오늘은 엄마가 회식있는 날. 날은 저물어 어두워지고 바람은 차지는데, 어린이집 잔디밭만을 고집하는 아이들. “우리 집에 가서 치킨 먹을까?” 겨우 달래 집에 데리고 들어와 부랴부랴 목욕을 마치고 나온 그 때, “딩동!”
“우와~~~~치킨이다.” 때 마침 도착한 치킨에 아이들은 기쁘다 못해 춤까지 추며 치킨상자를 받아든다. 몇 번 치킨배달을 경험해본 아이들은 현관 벨소리가 들릴 때면 어김없이 이렇게 묻곤 한다. “아빠, 치킨시켰어?”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고 했던가. 마른 논에 물 들어가 기뻤던 경험은 없지만, 자식 입에 무언가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것은 어떤 말인지 잘 알고 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배가 부르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실감하지 못할 테지만.
“아빠는 우리 아기들이 맛있게 먹으니까 너~~~무 좋아. 많이 먹어! 내 새끼들.”

#4. 그날 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 독서습관만큼은 책임지라던 아내의 말도 있고 해서 가능하면 텔레비전 대신 책을 집어든다. 아이들의 올바른 독서습관은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고 말하고 강요하는 것이 아닌,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잠자기 전까지 30분~1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으니 책을 보자. 잠시 책을 보고 있던 사이, 오 마이 갓! 사인펜으로 서로의 얼굴에 낙서를 하고 있는 아이들. 이미 볼과 이마, 턱에 색색깔의 그림들이 그려져있다. 사인펜은 잘 지워지지도 않는데 큰일이다. 얘들아! 그건 정말이지 안돼!”

#5. 2014년 4월 2일 아침. 일부러 저녁밥을 마련해두고 나갔는데 그것도 챙겨먹이지 못했다고 ‘한 소리’ 들었다. 기름에 튀겨 좋지도 않은 치킨으로 아이들 배를 채웠다고, 치킨은 밥 먹고 난 후 1~2조각의 간식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두 소리’ 들었다. 또 서로 얼굴에 낙서할 동안 뭐했냐고, 왜 세수시켜서 지운 후 재우지 않았냐고 ‘세 소리’ 들었다.

#6.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 혼내고 뒤돌아서면 내 마음이 더 아프다,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 등등, 정말이지 옛말 하나 그른 것 없다. ‘지금이 제일 예쁠 때’라는 선배들의 말이나 ‘품 안의 자식’이라는 옛말도 맞겠지? 나는 오늘도 퇴근과 함께 집으로 향한다.

#7. 기뻤다가 화났다가, 슬펐다가 행복했다가, 그야말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다이내믹하고 버라이어티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힘들고 화날 때 보다도 기쁘고 행복한 일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 그로 인해 느껴지는 행복감과 만족감은 내 인생의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소중한 가치라는 것.

#8. 1985년. 4학년짜리에게 선생님이 물었다. “신석우, 넌 꿈이 뭐니?” “아빠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유독 잊혀지지 않는 이 장면. 난 꿈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