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림 박수영 기자가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매주 화요일 오전 4시 20분, 임신해 거동이 불편한 부인은 조근 당번이 아닌데도 기어코 침실을 나선다.
    
  그냥 더 자라는 만류에도 부엌으로 가 뭐라도 아침 먹거리를 준비하고서야 침대 위 제자리로 돌아간다.
    새벽에 덩달아 몸을 일으키는 게 대단히 수고스러운 일이라는 걸 잘 안다.
    '돈 많이 벌어오라'는 당부만 없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건의 사항은 그래서 항상 입안에서만 맴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두 눈과 다채로운 음역의 목소리를 지닌 아내는 때론 내 혼을 쏙 빼놓는다.
    한가한 주말 오후, 햇살이 속눈썹에 부서질 때쯤 그녀는 집에서 취재원과 열띤 통화를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저 여인과 같은 편이라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아내가 비교적 부지런하다는 사실은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항상 그 자리에 있겠거니 하는 물건들은 실제 언제나 거기에 있다. '아내가 예비해 놨구나' 하는 고마움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에야 인지한다.
    

▲ 결혼식 전에 여유 있게 찰칵찰칵

  TV 홈쇼핑에서 쇼호스트로 일하는 아내의 절친이 한번은 우리 집을 찾아, 저녁상에 내놓은 등갈비를 방송하듯 맛깔나게 먹다가 곳곳에 정갈하게 밴 안주인의 손길에 혀를 내둘렀다.
    그제야 부인의 근면함을 발견한 나는 조금 빼돌릴까 싶었던 휴일 초과근무 수당을 고스란히 가져다 바치기도 했다.
    "결혼하니까 좋아?"
    그래도 난 쉽게 답하지 못한다.
    예컨대 계란 노른자를 얼마나 익히느냐에서부터 치약 짜는 방법까지 생활상은 너무도 다르다.
    대체로 편하게 잘 해주시지만, 그래도 서로 챙겨야 할 가족이 늘어나면서 신경 써야 할 일도 당연히 하나둘 더 생긴다.
    "결혼을 안 했다면 후회했을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결혼해서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게 적절한 해명이 될 순 없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면, 남편이 또는 아내가 밥 먹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도 상을 엎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워지는 순간이 있다는 게 시중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 아내를 사랑스럽게 바로보는 이재림기자

    그래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결혼 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함께 있을 때 지루하지 않다'는 점이다.
    집 곳곳을 채울 물건을 고를 때, 대패 삼겹살에 밥까지 볶아 먹고서 집으로 돌아올 때, 보세 상점에서 옷을 고를 때, 각자 편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 순수하게 즐겁다.
    일상이 즐겁다는 건 축복이다.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가장 두꺼운 장벽은 사실 스스로 쌓은 게 대부분인데, 그걸 조금씩 허물어 가는 재미도 있다.
    그러면서 때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아내가 내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된다.
   

▲ 이기자의 한눈 팔기 뭐가 좋은지 미소 까지 딱 걸렸어.....

 
    배우자는 곁사람의 자아가 더 맑고 노련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것 같다.
    그건 배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가정을 이뤄 누릴 수 있는 일종의 선물이다.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첫 단추는 잘 끼운 셈이라 믿는다.

        - 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