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JB 대전방송 최은호기자

  지난 1월초 인형 뽑기방 열풍을 취재를 하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도심 속 빈 상점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인형 뽑기방은 한 낮에도 수십 명의 이용자들로 북적였습니다. 10대와 20대 젊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인형을 뽑은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저 역시 현금을 꺼내 스무 번 가까이 시도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20~30번 시도해도 인형을 뽑아가지 못하는 것인지, 집게가 인형을 잘 들어 올리고도 움직이면서 실패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인형 뽑기방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던 중 흥미로운 제보를 받았습니다.
지난 2월 대전 서구의 한 무인 인형 뽑기방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인형이 사라졌다는 인형 뽑기방 업주의 신고로 경찰이 수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경찰 취재 결과, 20대 남성 2명이 2시간 동안 200개가 넘는 인형을 뽑아가 이들을 검거해 입건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조이스틱을 특정한 방법으로 빠르게 움직여 집게의 집는 힘을 강하게 조작하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특정 제조사에서 만든 일부 기계에서 이러한 일종의 ‘버그’가 통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멀리 경북 경산에서 대전까지 원정을 왔던 겁니다.

  “이럴 수가! 2시간동안 인형 200개를 뽑을 수 있다니.”
인형 뽑기방 내부 CCTV를 확인해봤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모자로 얼굴을 가린 2명의 남성이 새벽시간 주인이 없는 인형 뽑기방에 들어와 인형을 들어 올리는 족족 뽑기에 성공했습니다. 2시간 동안 무려 200여개,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1개씩 뽑았습니다. 인형뽑기 2인조로 인해 집게 힘을 줬다 뺐다하는 방법으로 확률을 조작한다는 인형 뽑기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을 어느 정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인형뽑기 기계 확률이 조작됐다는 의혹의 증거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해 보도를 결심했습니다.

  인형 뽑기 기계의 확률 조작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확률 조작 기기의 유통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 기자 신분을 속인 채 기계 유통업자들에게 접근했지만 확률 조작과 관련해서 명쾌한 답변을 얻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기자 신분을 속이고 실제 인형뽑기방 개업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위장해 유통 업자를 직접 만나 취재한 결과, 인형 뽑기 기계 구입 이후 얼마든지 인형 뽑기 확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인형 뽑기방 업주들이 매출 증대를 위해 출시 당시보다 뽑기 당첨 확률을 떨어뜨리고 있었던 겁니다.

  보도가 나간 뒤엔 인형 뽑기 2인조의 사법처리 여부를 놓고 논란이 컸습니다. 제 돈을 주고 인형을 뽑은 만큼 범죄혐의가 없다는 입장과 부정한 방법(버그)을 사용해 타인의 재산을 노린 만큼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팽팽히 갈렸습니다.

  인형 뽑기 기계의 확률을 조작하는 공공연한 비밀에 대해 시청자들의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집게의 힘을 조작하지 않는다면 1분에 1개 뽑는 것도 가능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평소 인형 뽑기를 즐기며 의구심을 가졌던 시청자들이 확률 조작 사실에 공감해 확률을 조작한 인형 뽑기 기계가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확률 조작 의혹이 불거지자 정부는 불법 영업 인형 뽑기방 단속을 시작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게임물관리위원회, 지자체, 경찰 등 관련기관들은 정기적으로 불법영업 업소를 단속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게임기를 임의로 개조해 인형을 들어 올리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업소는 물론 규정을 위반하고 5천 원 이상의 고가의 경품, 청소년 유해 물품을 제공하는 업소도 집중 단속 대상이 됐습니다. 인형 뽑기가 사행성 게임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뒤늦게라도 점검이 시작된 건데 정부의 단속의지를 꾸준히 지켜보겠습니다.
                                        -TJB 대전방송 최은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