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대전 최선중 기자

   1. 화장실 없는 호화주택에 사는 캐리(KAERI)

  캐리는 원자력연구원(Koera Atomic Energy Research Institute)을 말한다. 첫 글자를 모으면 KAERI가 된다. 스티븐 킹이 1970년대 쓴 공포소설 중에 '캐리'가 있다.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 돼 어머니의 지나친 종교적 믿음에 갇혀 살다 염력을 발휘해 주변을 휩쓸어 버리는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연구원 실무자들과 대화과정에서 ‘캐리’라고 자신의 기관을 칭할 때마다 이런 연상이 일었다. 특히 '외부와 단절'이란 측면에서 '소녀' 캐리가 생각났다. 한번 폭발하기라도 하면 주변을 다 휩쓸어버리는 측면도 오버랩됐다. KAERI가 있는 곳은 40만 평 정도 된다. 1959년에 기관은 생겼지만 대전에 건물을 지은 건 1970년대이니 소설 '캐리'와 얼추 나이도 비슷한 듯하다. 문제는 화장실이다. 공해 없이 청정에너지를 무한으로 만들어낼 듯 호화롭게 치장된 원자력발전이라는 영역에는 화장실이 부족하거나 KAERI처럼 화장실이 아예 없기도 하다. 화장실은 4백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경주 방폐장으로 몇 백 드럼씩 중저준위 폐기물을 옮긴다. 원자로 실험행위 중에 나온 장갑과 옷 등이다. 그런데 지난해 어느 시점부터 방사선관리구역 안에 있던 콘크리트와 폐전자제품 등이 버려지고 어떤 것은 태워졌다.

   2. 늦었던 1월18일 KBS 첫 보도.

  1월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특별감사가 두 달 째 접어든 시점이었다. 굵직한 감사활동은 마무리된 시점이었다. KBS의 첫 보도가 그 즈음에 이뤄졌다. 당시, 외부로 무단 반출된 폐기물을 처음에는 콘크리트가 아닌 ‘흙’으로 알고 있었다. 캐리의 해당 본부장 설명을 당시는 그렇게 알아들었다. 콘크리트 파쇄된 것과 흙이 섞여 있는 걸로.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 설명 안에는 “흙도 버려졌지만 원자력연구원 내에 안전하게 있다”는 메시지가 포함돼 있었다. 버린 시점과 버린 양은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에 해명 기자회견을 통해 일부를 밝혔다. 핵연료실험연구동의 리모델링 과정에서 배수로에서 뜯어낸 콘크리트 일부가 반출됐다는 것이라고 했다. 양도 적지만 방사성 오염 정도도 낮아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이 붙었다. 그리고 얼마 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중간 조사결과에서는 구체적이고 다방면(쓰레기 불법 소각, 방사성 장비 세척수 무단 배출 등 6가지)에 걸쳐 규정 위반 사실이 드러났다. 앞서 중도일보 최소망 기자가 하나로 원자로 내진보강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원자력연구원의 안전불감증 문제가 공론화해 온 상황이었다. KBS 보도의 역할은 그 위험을 일부나마 눈으로 보여준 데 있다. 어디에 버려졌고 무엇이 버려졌는 지 영상으로 보여 준 것. 이 과정이 5차례 계속된 후속보도의 내용이다. 이후 MBC는 콘크리트 뿐 아니라 폐전자제품도 버젓이 버린 사실을 보여줬고 시민단체들은 캐리에 형사적 책임을 요구했다. 언론들이 집중 보도를 한 결과는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이상민 의원을 중심으로 정치권이 나서 수년째 공전해오던 ‘제3자 시민검증’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새 원장은 협력소통부를 신설한다고 한다. 원안위 위원의 구성 틀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보도의 중심에는 직원이든 일정기간 캐리 안에서 일했던 공사관계자든, 양심적인 누군가의 제보가 있었다. 그 용기에 감사한다. 유승민 의원은 캐리를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일이 제보에 의해 밝혀졌는데 그럼 평소에 이뤄진 감사활동으로 통해서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던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맞는 말이다. 제보가 없었다면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특별감사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질문은 방향을 틀어 우리 언론에게도 유효한 지적이다.

▲ 원자력 연구원을 취재하고 있는 최선중 기자

   3. 3년 전 우라늄 잃어버린 캐리(KAERI)

  2014년 8월 6일, 캐리가 우라늄 2.6킬로그램을 분실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졌다. 분실 시점을 앞 뒤로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이 예정돼 있어 캐리는 발칵 뒤집혔다. 특히 핵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0.2그램의 저농축 우라늄도 감쪽같이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고 당시 과학기술부가 진상 조사에 나섰지만 우라늄 일부만 발견됐다. 우라늄을 보관한 실험실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노란색 작은 상자에 보관된 골프공 크기의 우라늄이 다른 쓰레기와 함께 버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연구원측은 분실된 우라늄의 양이 워낙 적기 때문에 인체나 환경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 귀 과정과 설명이 3년 후인 이번 방사성 폐기물 무단반출 사건과 닮았다. 이 3년 동안 무엇이 작동했어야 했던 것일까. 말뿐인 개선대책이 아닌 변화가 캐리 내부에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또 언론도 감시의 끈을 더욱 팽팽하게 잡고 있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3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4. 왕따 KAERI의 변신을 기대한다.

  소설 ‘캐리’는 왕따 소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만약 누군가가 소녀 캐리의 세계를 이해하고 서로 소통이 끈을 갖고 있었더라면 마지막 졸업식 파티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많은 사상자를 내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KAERI는 어떨까. 어려운 전문용어로 원자력의 안전성을 말해왔다. 그런데 일방적인 측면이 많았다. 원자력 전문가를 배출하는 과가 희소한 탓에 ‘원전마피아’라는 지적도 있어왔다. 이런 조직 특성은 하나의 쉴드가 된 듯하다. 쉴드는 두꺼워지면서 그 안에서는 소통의 불필요성을 높여왔던 것 같다. 그래서 소통은 연구원 건물 밖에 있는 체험관에 머물 뿐 연구원 안까지는 들어가지 못했던 게 아닐까. 체험관이 확 바뀌었으면 좋겠다. 간이 방사성 측정기도 들여놔 시민들이 직접 재어보고 안전을 확인했으면 좋겠다. 실내 체험 코스가 다양해지면 좋겠다. 이제 소통협력부가 출범한다니 기대가 크다. 소통의 부재를 아쉬워한 사람들뿐 아니라 어떻게 소통하면 좋을지 고민했던 사람들이 이 부서를 채우고 시민과 많은 것을 소통하면 좋겠다.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그것은 우리 모두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 KBS대전 최선중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