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8일은 일요일였다.

 

  약 2년전이지만, 그날 만큼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평소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나 다섯살 딸과 함께 아점 꺼리를 찾아 냉장고를 뒤적이고 있었다.

일요일은 내가 요리사니까 짜장라면을 먹을까, 시골 어머니가 만들어 준 누릉지를 데워 먹을까, 이것저것 귀찮은데 짜장면이나 시킬까 진지하게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딸이 "아빠 이게 뭐지"라며 보자기에 싸여 있는 보따리를 풀어헤치는 게 아닌가.

거실 한편에 이민가방만한 여행용 캐리어와 보자기로 싼 보따리, 라면 박스 2개가 놓여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가 봤더니, 2년간 지방 근무를 떠나는 신랑을 위해 아내가 준비한 물건들이었다.

캐리어 안에는 수트와 티셔츠 등 각종 옷가지는 물론 세면도구, 속옷, 양말에 슬리퍼와 운동화까지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라면상자에는 작은 냄비에 숟가락과 젓가락 한 벌, 전기 주전자, 즉석밥과 즉석국, 2ℓ들이 생수, 오렌지 주스가 있었다.

 

  소화제와 지사제는 물론 두통약과 감기약에 상처난 데 바르는 연고가 든 작은 상자도 있었다.

상자 옆에 놓인 A4용지에는 각종 물건 목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신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물건 목록을 작성한 뒤 하나라도 빠뜨릴까 줄을 그어가며 짐을 싸았을 아내의 얼굴이 캐리어 속 짐들과 오버랩됐다.

 

  겉으로는 "뭐 이런 것을 챙겼냐. 내가 거기가서 오지 않기를 바라는 거냐"며 타박했지만, 밤새 짐을 꾸렸을 아내를 생각하니 뭉클했다.

 

▲ 연합통신 특공 대대 한종구 이등병이 딸과 함께 촛불 전투에 참가한 사진

 

  낯선 곳으로의 출근을 위해 일요일 저녁 집을 떠나려는데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섯살 딸을 혼자서 돌봐야 하는 아내를 생각하니 답답했다.

아내는 집에 있으라는 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딸의 손을 잡고 지하 주차장까지 따라 내려왔다.

 

  "아빠 다섯밤만 자고 올게"라며 딸에게 헤어짐의 손짓을 하자 딸은 그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내가 죽으러 가냐"라며 울고 있는 딸과 아내를 꼭 안아주고 나는 그렇게 홍성·예산 내포신도시에 왔다.

그날을 시작으로 월요일 오전 내포로 출발해 한 주를 보낸 뒤 금요일 오후 다시 대전으로 돌아가는 이른바 '내포 아저씨' 생활이 어느덧 1년하고도 10개월이다.

 

  정이 들만 하면 헤어진다는 말이 사실인 듯, 이제 대전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 글이 기자협회보에 실려 동료들에게 배달됐을 때는 아마 대전에 있을 지도 모른다.

한 때 대전 기자들 사이에서 '내포는 (가기 싫어) 울면서 가지만, 돌아올 때도 (돌아오기 싫어) 울면서 오는 곳'이라는 말이 있었다.

 

  필자의 경우 이 말이 꼭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아주 조금은 맞는듯하다.

회사의 당직과 가정의 육아 부담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유생활도 누려봤다.

대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나만을 위한 취미생활도 해봤다. 대전에 복귀하면 쉽지 않을 것이다.

 

▲ 연합통신 특공 군단의 기자들이 회이팅!을 외치고 있다.

 

  내포에서의 기자 생활은 군 입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번 쯤 가는 것은 괜찮지만, 다시 가기는 싫은 곳'이라고 할까.

 

  2년 가까이 내포 생활에 활력을 준 동료 기자들과 출입처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