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일보사 임직원 가을 등반대회가 계룡시 향적산 일원에서 열린 가운데 임직원들이 등반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달 전쯤인가. 사내 게시판에 '직원 등반대회'를 알리는 방이 붙었다. 장소는 충남 계룡시에 위치한 해발 574m의 향적산 국사봉이었다.

군 시절 해발 800m의 뒷산을 뛰어오르던(?) 시절을 생각하면 무난한 코스라고 생각했다. 물론 급격하게 불어난 체중과 쇠약해진 체력을 감안하면 만만한 코스가 아니란 걸 알았다. 군 시절 몸무게는 65㎏, 현재는 20㎏ 수준 오바 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불어난 20㎏의 주된 요인은 기자생활을 하며 무자비하게 들이킨 소맥(소주+맥주)이었다. 그래도 30대 중반의 나이기 때문에 해발 574m 앞에 무릎 꿇을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했다.
 

게시판을 바라보는 동료들은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향적산 가봤어?", "등산 해 본지 오래됐는데 걱정이네", "저 정도 높이는 식은 죽 먹기지" 등등의 멘트들이 퍼져나갔다. 나는 "저 정도 높이는 식은 죽 먹기지"라는 멘트에 자신 있는 한 표를 던졌다.
 

10월 26일 향적산 등반 당일. 이른 아침 눈을 떴다. 하늘은 무심하게도 맑기만 했다. 버스를 타고 향적산으로 이동하는 데 50분, 동료 대다수는 버스 안에서 시체처럼 잠이 들었다.
 

출발점에 도착한 후 다 같이 파이팅을 외치고 첫 발을 내딛었다. 잠시나마 선두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산행을 시도했다. 그 탓이었을까. 출발 10여분만에 종아리 근육이 땡기기 시작하는데…

선두권을 포기해야만 했다. 중반부로 뒤쳐져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20분쯤 지날 무렵 몇 몇 동료들은 그늘을 찾아 막걸리 타임을 갖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했다. 술기운이 장사라고 믿어야만 했다. 막걸리를 세잔 마시니 취기가 올랐다. 물론 주량이 그 정도는 아니다. 지친 육체는 알코올 기운을 빠르게 흡수한 것이다.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향적산은 악산이라는 점을 눈치챘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마치 암벽등반을 연상케 했다.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누가 이 길이 산책로라고 했는가", "죽겠다, 죽겠어" 등등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앓는 소리를 하는 대다수 동료들은 여성도 아닌 남성들이었다.

나를 포함한 그들의 공통점은 폭탄주를 즐겨 찾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정상에 오르는 데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물론 짧은 거리다. 하지만 체감시간은 3-4시간으로만 느껴졌다.
 

우리는 목표지점에 올라 "술을 줄여야지, 체력이 많이 떨어졌네"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다시 배낭에서 막걸리릴 꺼내 들어 정상의 기쁨을 만끽했다는 것이다. 

향적산 산행 이후 이틀간 걸음이 편치 못했다. 안 쓰던 근육들이 뭉쳐 이른바 '알'이 됐기 때문이다. 30대 중반 나이에 해발 574m 앞에 결국 무릎을 꿇은 모양새다. 지인들은 내게 묻는다. "기자 생활하면 술 많이 드시겠어요, 건강 챙기려면 운동 좀 하셔야 겠네요"라고.

사실 기자라고 해서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아니다. 술자리를 찾아 다닐 순 있지만, 그렇다고 매일 술을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니다. 향적산 산행 이후 결심했다. 술 자리를 찾기보다 잃어버린 내 체력을 챙겨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