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비밀>

 

 

▲ '탄방사랑 cbs 정세영 기자'와 '차타고 놀자 go 사랑' 한겨례 최예린 기자

 

  정세영. 그를 처음 만난 건 2014년 봄 대전경찰청에서였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사람 중에 제일 똑똑하다”는 고아무개 선배의 유언비어에 속아 그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생긴 터였다. 빨간 가디언에 청바지, 멀끔한 모습. 호감이었다. ‘똑똑하다’는 선입견에 절제된 미소, 중저음의 목소리까지 더해지니 꽤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나이가 나랑 띠동갑이란다. 어쩔 수 없이 궁금했다. ‘멀쩡해 보이는데 왜 저 나이 먹도록 결혼을 못 했을까?’

 

  1년여 뒤 그와 연애를 시작할 때도 여전히 나는 궁금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좋은 인격의 소유자 같은데(‘같은데’가 중요하다), 얼굴도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은데(역시 ‘같은데’가 중요하다), 비혼주의자도 아니라는데, 왜? 정선배 어릴 적 친구들의 증언은 더 충격적이었다. 적어도 그들이 알기론, 이 사람 평생 여자친구는 내가 처음이란다. 연애 초반 화르르 불타오르던 그의 모습은 사뭇 20대 젊은이의 그것이었지만, 그래도 저 나이에 모태솔로라니? ‘오마이갓, 이 사람 무슨 문제 있는 것 아니야?’

 

  정선배와 연애는 수수께끼 풀기에 가까웠다. 그를 경험하고, 관찰하고, 어리둥절하고, 분석하고, 분노하고, 타협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1년 남짓 반복하니 ‘아, 저래서 장가를 못(?) 갔구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일단 이 남자 집돌이다. 쉬는 날이면 집에서 뒹굴거리기 바빴다. 활동성 1도 없는 남자의 주 활동 무대는 탄방동. 그의 아파트 근처였다. 친구도, 후배도, 출입처 관계자도 죄다 탄방동으로 불러 술을 마셨다. 연애의 반경도 다르지 않았다. 내 자취방도 같은 동네에 구하게 하더니 탄방동에서 밥 먹고, 영화 보고, 커피 마시고, 걷고…. 당최 이 동네를 떠날 생각을 안 했다. 활동성 없기로 남부럽지 않은 나지만 그의 적수가 되기엔 턱도 없었다. “우리도 차 타고 놀러 좀 가자”고 투정부리기도 지쳐 결국 나는 ‘그래, 당신을 탄방사랑남으로 인정하노라’며 포기했다.

 

  무엇보다 그는 친구를 너무 좋아했다. 친구랑 술 마시러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이란 어쩜 저리 경쾌한지. 그와 친구들의 단톡방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렸고, 그러고도 할 말이 남았는지 전화 통화까지 했다. 결혼해보니 실상은 더 했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일상을 공유하며 히죽거리는 남자들. 신혼여행 가서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그들의 모습에 경악했다. 30년 가까이 만났으면 질릴 때도 되지 않나 싶었지만 이 사람, 친구 일엔 귀찮아하는 법이 없었다. 저 정도면 여자 없이는 살아도 친구 없이는 못 살겠구나 싶어 역시 두손 두발 다 들었다.

 

  혼자 놀거나 친구랑 놀면 세상 좋은데 여자친구가 딱히 얼마나 필요했을까. 거기다 의외로 까다로운 성미에 똥고집까지 장착하니 웬만해선(집을 벗어날 만큼) 같이 놀 여자 하나 정하기도 귀찮았을 테다. 애초 궁금증이 풀릴 때쯤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근데 이 사람은 왜 하필 나를 선택했을까?’ 혼자 살아도 충분할 사람이 고르고 골라 만난 여자가 하필 나란 말인가. 여전히 미스터리다. 게으른 아내를 소파에 앉혀두고 꼬박꼬박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밥을 하고, 설거지하는 지친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와 나의 만남이 얼마나 미스터리한가 오늘도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는 물 만난 고기처럼, 셋(뱃속의 둘리까지)이 같이 집에서 뒹굴뒹굴 별일 없이 살고 있다. 초라한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익숙한 존재에 감탄하며, 일상을 특별하게 여기는 역설의 수수께끼. 뭐, 사랑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