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오전.

연일 나오는 배추 값 폭락 소식 때문에 교외의 한 배추밭을 찾게 됐다.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현장르포를 한 번 써보는 게 좋겠다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리 배추농가를 소개받고 출발하긴 했지만 취재는 초반부터 난항이었다. 소개받은 농민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봐도 배추 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은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차를 타고 1시간 가까이 지역 이곳 저곳을 뒤졌고 고생 끝에 겨우 밭 근처에서 잡초들을 뽑아내고 있는 한 농부를 만날 수 있었다. 자칫 기사를 펑크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만난 어르신이 꽤 친절하게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덕에 흔히 말하는 '일보'를 올릴 시간전까지는 다행히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취재가 끝난 뒤 내가 기사를 펑크내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무렵 어르신은 조용히 오디즙을 한잔 권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다.
 

그중 하나가 '제발 한 사람 얘기만 듣고 기사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어르신은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 한군데 정도 다녀보고 그대로 기사화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전국에 배추 밭이 수천 곳이 있는데 한사람의 얘기가 마치 전국적인 현상인 것처럼 보도가 돼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기자들의 생리를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는 그 날카로운 지적에 나는 그곳을 떠날 때까지 단 한마디의 변명이나 해명도 할 수가 없었다.
 

문학식으로 말하면 사회의 흐름을 짚어줄 수 있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기사를 써야 하는 데 나는 이날 작은 현상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자연주의'를 통한 기사를 써버렸기 때문이다.
 

헝가리의 철학가이자 문예비평가인 게오르그 루카치는 '자연주의'에 대해 '그릇된 객관주의'라고 지칭하며 삶에 도전할 기력을 잃은 정물화적 표현이라고 깎아내렸다. 단순히 눈앞의 현상만 놓고 표현하는 것은자칫 시대의 큰 흐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이는 소설에 국한된 얘기지만 결국은 기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기사는 요소하나하나가 모두 사실(fact)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실이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다. 수천개의 배추 밭 중 한 곳에서 벌레가 발생했다고 해서 전국적으로 벌레가 급증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자가 어떤 사실을 가져다 쓰느냐는 기사의 진실성 여부를 가르는 역할을 한다. 어찌 보면 '자연주의'란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