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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道1社 기자의 기자인생 역정기전두환이 강제로 만든 1도1사에 막차로 타
대전세종충남기자협회장 이인범  |  bodo@tj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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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0  12: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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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기자의 기자인생 역정기
   -전두환이 강제로 만든 11사에 막차로 타
   -전국 일선기자 중에 몇 안남은 천연기념물
   -뼛속까지 기자...30년 외길 9부능선 넘는 중
 
   
▲ 이인범 대전.세종.충남.기자협회장
  어쩌다 한 번씩 서울 프레스센터 안에 자리잡은 한국기자협회로 출장 갈일이 있다.
 
  전국 시.도기자협회장 모임 또는 한국기자협회 창립 기념식이나 정기총회 등등 1년에 5~6차례는 올라가는 것 같다. 이 모임에 참석하면 나는 거의 천연기념물대접을 받곤 한다.
 
  만나는 후배들 마다 “11사 선배님 안녕하셨습니까?”로 인사가 시작된다.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는 전국의 기자들 가운데 11사 기자는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천연기념물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내말 한마디에 토를 달거나 반박을 하는 후배도 없다. 고맙게도 기자짬밥에 고개를 숙여준다고나 할까?
 
  내가 기자세계에 첫발을 내딛은 건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88년 한여름 무렵이다. 첫 직장인 농협을 과감히 버리고 대전일보 공채 36기로 입사했다.
 
  그 무렵, 나는 지금의 아내와 약혼을 한 상태였다.
 
  충북 보은의 시골 처갓집에서는 막내사위가 농협직원이라며 그럭저럭 신임을 하던 차였는데, 결혼을 석달 앞두고 직장을, 그것도 기자로 옮긴다고 하니 난리가 났다.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거부감이 그만큼 컸던 시절이다.
 
  그 당시, 대전엔 신문사가 대전일보 한곳 밖에 없었다.
 
  전국의 상황도 마찬가지.... 무지막지한 전두환 정권이 전국의 신문사를 강제로 통폐합해 11사 체제를 만들어 놨는데, 언론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이 틀이 깨져가고 있었다. 각 시.도 마다 통폐합 당한 언론사들이 복간을 준비중 이었고, 대전에서도 중도일보가 복간을 선포하고 기자를 모집중 이었다.
 
  이런 어수선한 시기에 11사 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을 무렵 기자가 됐으니 공식적으로 난 마지막 ‘11사 기자인 셈이다.
 
  11사 기자의 위세는 참 대단했다. 어쩌다 취재차 일선 시.군을 방문할 때면 시장.군수들이 열일 제쳐두고 버선발로 마중 나왔고, 순찰차의 캄보이에 덤으로 촌지 봉투까지...칙사도 이런 칙사가 없었다.
 
  지금도 이런 전설 같은 얘기를 후배들에게 약간의 썰을 보태 들려주면 부러움에(속으론 욕할 테지만) 입을 다물지 못한다.
 
  11사 시대가 마침내 저물고 신문이 무한 경쟁시대로 접어들었다. 중도일보에 이어 대전매일(충청투데이 전신) 까지 생겨나 신문3사 시대가 열렸다.
 
  11사땐 출입처에 광고요청 한번 없이 기사발굴에만 쫓아다녔던 풋내기 기자에게도 무언의 압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사와 광고를 엿바꿔 먹지말라는 선배들의 지시를 철석같이 여겼던 나로서는 참 곤혹스러웠다.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난 당시 선배들의 지시를 단 한 번도 어긴적이 없다.
 
  때로 광고 부담을 호소하는 후배들의 하소연을 접할 때면 기자와 광고는 별개라는 소신 때문에 광고는 기사 열심히 쓰면 저절로 따라오게 돼있어라는 뜬구름 같은 얘기를 한다.
 
  신문기자에 대한 염증이 점점 커갈 무렵, 민방시대가 찾아왔다.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열리면서 지방에도 민방허가가 났고, 운 좋게도 그 대열에 합류할 기회가 찾아왔다. 신문과 방송을 동시에 경험해보는 안되는 기자의 행운을 얻었다.
 
  어느덧 방송기자 세월도 벌써 23. 마냥 걱정 없을 것 같았던 방송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이명박 정권이 무더기로 종편허가를 내준데다 포털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주수입원인 광고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신문기자 시절 느꼈던 염증이 다시 느껴질 정도로 환경이 극도로 척박해지고 있다.
 
  이러다 방송기자들 마저도 광고일선에 내몰리는 건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다.
 
  기자 한길만 걸어온지 만 30. 걸어걸어 오다보니 같은 출발선에 섰던 11사 기자들도 대부분 사라졌다. 신문 쪽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방송 쪽만 몇 남았다. 방송에서 출발했던 동료.선배들은 엄밀히 말해 11사와는 무관하기에 나와 동년배인 극히 일부만 천연기념물 자격이 있다고나 할까?.
 
  아침 출근길에 나설 때 마다 난 거울 앞에 비친 내 모습과 독백을 한다. ‘정년까지 남은 시간은 3, 운 좋게 잘 헤쳐왔구나. 9부 능선까지 왔으니 마지막 고개만 잘 넘겨
 
  난 뼈 속까지 기자다. 운이 따랐기에 마지막 11사 기자로 남았다. 이제 주어진 시간은 3, 11사 기자의 마지막 빈칸을 어떻게 채울지 답을 찾아볼 생각이다.
 
                                          대전.세종.충남 기자협회장 이인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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