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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의심하라”는 법의학자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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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2  17: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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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과수 모습. 김정남 기자
법의학자는 사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만을 밝혀내면 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 편에 서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 법의학이니까요. 한국에서 법의학이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매우 굉장한 일입니다.”
 
  한일 양국 법의학자의 대담을 담은 <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라는 책의 내용 중 일본 법의학자인 우에노 마사히코의 말이다. 그가 말한 ‘법의학이 정권을 무너뜨린’ 일은 바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영원히 묻힐 뻔한 박종철 열사의 죽음의 진실을 드러낸 것 중 하나는 부검의의 증언이었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셈이었다. 이 책은 신입기자가 되고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대학 은사께서 추천하신 책이었다. ‘죽은 사람 편에 서서 진실을 말하는’ 법의학자처럼, 진실을 전하는 기자가 되라는 뜻이 담겨있으셨던 것 같다.
 
  지난 7월 나는 오랜만에 이 책의 구절을 다시 떠올렸다. 원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만난 양경무 중앙법의학센터장의 “한 번 더 의심하라”는 한마디를 통해서였다. 양 센터장에 따르면, 이런 사건이 있었다. 가게 앞에서 쉬고 있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뭇 어르신들에게 찾아드는 죽음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으나 부검 결과 숨겨진 이유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몸에서 출혈이 발견된 것이다. 할아버지의 행적을 따라 CCTV를 확인한 결과 할아버지가 쓰러지기 전 길을 가다 사고를 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복강 내 출혈이 시간이 지나며 혈류량 감소로 인한 쇼크를 야기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2016년 충북 증평에서는 한 할머니가 숨진 채 발견됐다. 할머니는 부검 없이 ‘자연사’로 결론지어졌고 유족들도 그렇게 알고 장례를 진행했다. 할머니의 진짜 사인이 드러난 것은 우연이었다. 유족들이 사망시각을 알아보기 위해 집 앞마당 CCTV를 확인했는데 사망시간대에 한 남성이 찍혀있었던 것. 할머니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닌 ‘타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변사에 관한 업무지침’을 개정하면서 부검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부검이 모든 죽음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히 그 중 누군가는 죽음의 실체에 달리 접근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검인력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고, 사망진단서에 ‘병사’로 표기되는 것을 수사관도 의사도 하다못해 유족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도 듣게 됐다. 그렇게 사명감에 불타시는 분들도 쉬는 날에는 하루 종일 예능만 보고 일과 거리를 두려하신다는 토로에는 안쓰러움과 책임의 무게가 느껴지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은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진행한 ‘취재보도를 위한 과학수사의 이해’ 교육을 통해서다. 복직 이후 다시 사건기자를 맡게 됐지만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기에는 너무도 미숙하다는 자성이 교육에 대한 목마름으로 이어졌다. 사건사고와 과학수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고 하지만 현장기자에게는 아직도 가까이 하기엔 멀다는 것도 교육을 듣게 된 또 하나의 이유였다. “이때가 아니면 내가 언제 국과수에서 밥을 먹어보겠느냐”는 말과 함께 배를 든든히 채웠던 국과수 구내식당 경험과 많은 전문가들과의 만남은 덤이었다.
 
  교육 과정에서도, 또 <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에서도 결국 말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형언하기 어려운 사건사고 현장을 지키는 이유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사건기자인 나는 현장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또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희미해졌던 마음을 되새기는 계기도 됐다. 끝으로 빡빡한 인력에도 3박 4일간의 교육일정에 후배기자를 선뜻 보내주신 대전CBS 선배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대전CBS 김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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