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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 함량 초과' 수도계량기 8만 5천여 개 유통 취재후기
대전세종충남기자협회  |  classystyl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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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2  17: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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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기준을 아예 안 지켰다고 보면 됩니다"

지난 6월, 한국수자원공사에 수도계량기를 납품하는 업체에서 근무했다는 A 씨를 만났습니다. 올 초 해당 업체를 그만둔 A 씨는 취재진에게 납 함량이 납품기준을 초과한 수도계량기가 수자원공사에 납품돼 아무렇지 않게 시중에 공급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업체가 납품기준을 아예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각 가정에 공급되는 수돗물이 통과하는 수도계량기입니다.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면 당연히 납품 과정에서 걸러졌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증이 필요했습니다.

업체 16곳 가운데 6곳 납 함량 납품기준 초과

취재진은 수자원공사에 A 씨가 다닌 업체를 포함한 납품업체 3곳의 제품 표본을 요청했습니다. 경기도 광주와 경남 거제, 경북 청송 지역에 설치된 것들이었습니다. 확보한 수도계량기로 시험기관에 재질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업체 3곳 가운데 2곳의 납 성분 함량이 각각 2.75%와 2.31%로 수자원공사 납품기준인 0.85%를 3배가량 초과했습니다.

이 사실을 수자원공사에 알리자 납품 업체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수자원공사에 계량기를 납품하는 업체 16곳이 대상이었습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체 16개 납품업체 가운데 6곳이 납 함량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납 함량이 3.6%로 납품기준을 4배 넘게 초과한 곳도 있었습니다.

납품기준 초과 수도계량기 8만5천여 개...각 가정에 공급

수자원공사는 서울시와 부산시 등 광역자치단체를 제외한 중소규모 시군의 상수도를 위탁 관리하고 있습니다. 수자원공사의 각 관리단이 해당 지역 노후 계량기 교체 사업을 자치단체 대신하고 있는 겁니다. 수자원공사에 납품된 납품기준 초과 계량기들은 이렇게 각 가정에 공급됐습니다. 해당 업체들이 지난 5년 동안 경기도와 경남 등 전국 수자원공사 관리단에 납품한 수도계량기는 약 8만 5천여 개로 이 가운데 대부분이 이미 가정에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시험성적서 조작, 검증도 없어

이처럼 납품기준을 초과한 수도계량기가 어떻게 아무런 제재 없이 수년 동안 유통됐던 걸까요? 업계 관계자들은 납 함량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수자원공사에는 업체가 알아서 정한 표본으로 시험성적서만 제출하면 되는데 일부 업체는 이때 납 함량 기준을 맞춘 재질 검사용 표본을 따로 만들어 엉터리 성적서를 제출했습니다. 검사용 제품과 실제 납품용 제품이 완전히 달랐다는 겁니다.

이런 꼼수를 막기 위해 서울시는 표본을 지정해 성적서를 제출하도록 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마저도 지정한 표본을 중간에서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조작할 수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서울시에 납품한 한 업체의 계량기에서 납 성분이 2.4 % 검출돼 2만 개가 반품되기도 했습니다.

"생산원가 아끼려고...우리 회사만이 아니에요"

이유는 비용이었습니다. 수도계량기는 납 함량이 높을수록 제작이 쉬워집니다. 금속재료로서 납은 녹는점이 낮아 가공하기 쉬운 특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주로 합금재료로 사용되는데 납 함량이 높을수록 생산원가를 많게는 절반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납품 기준을 위반한 업체 관계자는 서울시에 제출하기 위해 납 함량 기준에 맞게 제작한 표본으로 받은 시험성적서를 수자원공사에 그대로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일이 자기 회사만이 아닌 업계의 관행이라고 털어놨습니다.

'납 초과' 수도계량기 전량 회수...검증 절차 강화

수자원공사는 납 함량 납품기준을 초과한 계량기에서 실제 수돗물에 용출된 납 성분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8만 5천여 개를 전량 회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또 휴대용 금속 재질 분석기를 도입해서 검증 절차를 강화하고 앞으로 감독관이 표본을 선정해 직접 재질 검사를 의뢰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희생양입니다", "우리는 피해자입니다"

보도 이후 납품기준 위반 업체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공공연히 이뤄지던 관행을 묵인하던 수자원공사가 취재가 시작되자 일부 업체를 희생양으로 삼아 비난을 피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기관마다 제각각인 납품기준을 성토했습니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수도계량기 납 함량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법적 기준이 없어 납품기준이 다 다르다 보니 생산 과정에서 조건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했습니다.

반면 수자원공사는 피해자라는 입장입니다. 더 잘해보려고 다른 기관보다 까다로운 납품기준을 세웠고 납품계약서에 명시돼 있는 조건을 업체가 당연히 지켰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위반 업체에 대해 자사 납품자격 박탈하고 부정당 업체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누가 희생양이고 누가 피해자인 걸까요? 얄팍한 상술과 당국의 관리 부실이 빚어낸 이번 사태. 진짜 희생양이자 피해자는 앞으로 불안한 마음으로 수돗물을 이용해야 하는 국민이 아닐까요?

-KBS대전총국 성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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