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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임시정부 요인들의 숨결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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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2  17: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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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6일 오전.
중국 상하이 하늘은 습기를 가득 머금은 회색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날씨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기자협회가 주관한 6일간의 중국 단기연수 과정은 이처럼 흐린 날씨 속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첫 방문지는 연수의 주제에 걸맞게 상하이시 황푸구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였다.

상하이 속 작은 유럽으로 알려진 신톈디 앞 2차선 도로 건너편을 바라보자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현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상하이 임정 청사를 가본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다만 교과서에 나온 단편적 지식을 바탕으로 의무감에 한 번 둘러본 것뿐 그 이상의 이해는 없었다.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사용한 상하이 임정 청사는 주택가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1층은 응접실과 부엌, 2층은 집무실, 3층은 침실로 구성돼 있다. 1993년 한국과 중국의 복구공사로 복원됐다.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하면 상하이만을 생각하지만, 임정은 1926년부터 해방이 되던 1945년까지 26년 동안 중국에서 활약했다.
학자들은 임정의 활동과 근거지를 기준으로 상하이 시기(1919∼1932년), 장정 시기(1932∼1940년), 충칭 시기(1940∼1945년)로 구분한다.
상하이 임정 청사 곳곳을 둘러보는 동안 한 중국인 남성이 어눌한 한국어로 "사진 찍지 마세요"라며 관람객을 따라다녔다. 일부 관람객 사이에서 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느냐며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남의 나라에 임시정부를 차린 100년 전처럼 흔적마저 남의 관리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불편한 심기를 뒤로 한 채 연수단은 매헌 윤봉길 기념관이 자리한 루쉰공원(옛 훙커우 공원)으로 이동했다.
입장료 15위안을 내고 공원 한편에 있는 '매원'에 들어갔다. 윤봉길의 호 매헌을 딴 기념관이 자리한 곳이다.

1932년 4월 29일 새벽. 윤 의사는 백범 김구와 이른 아침을 먹었다. 윤 의사에게 있어 최후의 식사였다. 식사 뒤 윤 의사는 자신의 회중시계를 꺼내 백범에게 내밀었다.
"어제 산 6원짜리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 것과 바꾸시죠.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 쓸 데가 없으니까요."
백범은 시계를 건네받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도시락과 물병으로 위장된 폭탄 두 개를 건넸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훙커우 공원은 굉음과 비명에 휩싸였다.
매원에는 윤봉길 의거 현장이라는 표지석이 있지만, 사실 이곳은 역사의 현장은 아니다.
전 세계에 대한민국이 독립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계기가 된 현장은 매원에서 100m가량 떨어져 있다.

실제 의거 장소에는 중국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루쉰의 묘가 있다.
'많은 사람이 걸으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고 말한 루쉰과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폭탄을 던져 스스로 대한 독립의 길이 연 윤 의사의 흔적이 한 장소에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상하이 사변' 승리를 자축하려던 일제에 윤 의사의 의거는 충격과 공포였다. 반면 중국과 조선인들은 환호했다. 명맥만 유지하던 임시정부에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이 이뤄진 것도 윤 의사의 의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동시에 백범을 비롯한 임정 요인들이 일제를 피해 상하이를 떠나 피난살이에 나서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상하이에서 항저우까지 뚫린 운하의 첫 번째 도시 자싱이 백범이 한동안 피난살이를 한 곳이다.
연수단도 백범의 뒤를 따라 자싱으로 이동했다. 옛 거리를 재연한 자싱시 메이완지에 76호가 바로 백범이 피난 생활을 한 곳이다.
항저우와 자싱이 있는 저장성 일대는 물의 도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곳곳이 수로로 연결돼 있다. 백범이 생활했던 곳도 호수와 맞닿은 주택이었다. 수로를 통해 항저우 등 가까운 지역은 물론 멀게는 베이징까지 갈 수 있다.

백범은 일제의 눈을 피해 배를 타고 운하를 다니며 육지를 밟는 시간을 줄였다고 한다. 그는 백범일지에 '오늘은 남문 호수에서 자고, 내일은 북문 강변에서 잤다'고 적었다.
자싱에서 백범의 흔적을 돌아본 연수단은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하기 위해 항저우로 이동했다.
항저우시 호변촌에 위치한 항저우 임정 청사는 1932년부터 1935년까지 사용한 곳이다.
청사는 1920년대 지어진 2층 건물로 1층에는 손님방과 주방이 있고, 2층에는 당시 임정 요인들이 서재로 사용한 크고 작은 침실들이 있다.

2012년 독립기념관의 전시 지원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당시 임정은 1932년 5월 국무회의를 열어 국무위원의 업무를 조정하는 등 임정을 재정비했으며 외교와 재정, 군사 등 독립운동단체의 최고 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임정의 활동은 국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민족정신과 항일의식을 일깨워줬다.
임정 요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간 이번 연수는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일제 헌병보다 두려운 것은 한국인 밀정이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들의 견해 차이 때문에 한때 임정 폐쇄 주장이 나오는 등 갈등과 반목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계층·이념·세대·지역 간 갈등으로 사분오열된 사회를 사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얼마나 큰 교훈을 주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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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
사과티비에 재밌는 정보 많아요 ~
(2020-01-15 11:35:26)
윤미경
사과티비에 좋은정보 많아요 공유하고 갈께요 ~
(2020-01-15 11:33:40)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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