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훈 기자

작년 봄, 6년차 신문기자 생활을 접고 방송국 문턱을 넘었을 때 덜컥 걱정이 났습니다.
앞서 면접장에서 맞닥뜨린 사장에겐 호기롭게도 ‘무조건 할 수 있다’는 말을 쉬 내뱉었습니다.

막상 방송국으로 출근해보니 배포 넘치던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쥐도 새도 모르게 오그라들었습니다.
마이크를 쥔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수십 번씩 머릿속에서 되감기 했던 원고는 카메라 앞에 서자마자 옹알거리기 일쑤였습니다.
‘이러다가 생방송이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로 눈앞이 캄캄해지겠구나’는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좌충우돌 부딪치며 지내던 어느 날, 부장께서 지나가며 “그래도 네가 신문에서 왔으니까 기획력은 좀 있겠구나”라는 말을 던졌습니다.
묵직한 돌직구가 날아옵니다. 안타는 못 치더라도 번트는 대야겠습니다.
남이 쓴 기사를 베끼는 이른바 ‘우라까이’는 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있는 밑천 없는 밑천 다 끄집어내 머리를 굴려댔습니다.
사건팀에 몸담고 있으니 별의별 일을 다 찾아다녔고, 영화 올드보이 주연인 최민식의 극중 이름인 ‘오대수’처럼 오늘도 대충 수습하며 간신히 하루를 막았습니다.

몸은 고단해도 숨은 좀 돌릴 만하니 또 다른 숙제가 던져졌습니다.
말글을 입글로 다듬는 겁니다.
5년간 머릿속에 인이 박혔던 말글, 신문 어투를 뽑아내고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원고를 써내야 하니 여간 괴로운 것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취재 내용을 쉽게 풀어쓰는 일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다 쓴 기사 원고를 모니터에 띄워두고 지웠다가 썼다를 반복했습니다.
200자 단신부터 다시 고쳐 썼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좀 적응됐다 싶었는데 아뿔싸 하나가 더 남아있었네요.
전대미문의 감염병, 코로나 19가 한반도를 덮치고 회사에선 재난방송 체제를 가동했습니다.
작년 여름, 제13호 태풍 링링이 상륙했을 때 재난방송은 이도 안 난 수준입니다.
어느새 부터 매일 생방송과 특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엔 갑자기 특보가 잡혀서 부랴부랴 벼락 원고를 썼습니다.

그런데 방송이 시작된 후 앵커가 질문을 뒤바꾸는 바람에 머릿속은 뒤바뀐 질문보다 더 뒤엉켜버립니다.
뉴스 스튜디오 카메라의 온에어가 꺼지고 나니 등에 식은땀이 흥건합니다.
아직도 갈 길이 한참이나 남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닥쳐올지, 내일은 더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또 하루를 보냅니다.

정재훈 KBS 대전방송총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