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에 들어가면서 고민은 ‘밥’이었다. ‘내 새끼 밥은 내가 직접 한다.’였는데...휴직이 끝나가는 지금도 여전히 고민이다.

▲ 볶음밥이 가장 쉽다고?

아이 엄마는 가장 쉬운 게 볶음밥이라고 했다. 당근 하나를 다듬으며 생각했다. ‘거짓말이다.’

칼을 대면 쉽게 썰어질 것 같은 당근을 붙잡고 낑낑댔다. 당장 작게 들어갈 당근을 어떻게 썰어야 할지 몰랐다. 호박도, 양파도...

재료 다듬는 데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이 엄마가 톡으로 보내준 레시피. ‘야채와 고기를 볶고 간장을 넣어’ ... 간장 종류가 참 많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용도에 넣어야 하는지는 당연히 몰랐다.

반찬은 할 줄도 모르고 만들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볶아놓은 밥을 시식했다. ‘아... 아이가 아직 말을 못하는 게 다행이다.’ 정말 맛이 없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는 맛있게 먹었다.

매일 매일 다양한 식단을 짜서 먹이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한 번에 서너끼 분량의 볶음밥을 했다. 냉동실에 넣어뒀다. 아침에도 볶음밥을 먹였다.

▲ 볶음밥도 아이도 변했다

육아휴직이 끝나가는 지금도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볶음밥뿐이다. 아이는 여전히 아빠가 서툴게 만들어 준 볶음밥을 먹고 있다. 가끔은 사과나 토마토도 볶음밥 재료로 넣는 기교(?)도 부린다.

160일 넘게 그 볶음밥을 먹어 온 아이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숟가락과 포크를 서툴게 쥐었던 손 모양이 어느 새 야무지게 바뀌었다. 볶음밥의 1/3을 받아내던 턱받이도 어느새 치워내고 조금씩 흘려가며 먹고 있다. “고기, 고기”하며 가끔 메뉴를 정하기도 한다.

밥 먹을 때 엄마 손을 잡아 당겨 꼭 쥘 정도로 힘도 붙었다. 아빠 새끼손가락을 꼭 잡고 다니던 곳도 가끔 용기를 내 뛰어가기도 한다.

집에 들어오면 손을 씻겠다고 발판을 밟고 올라서기도 한다.

어린이집에서 ‘말이 가장 느리다.’고 했던 아이가 요즘은 수다쟁이가 됐다. 무슨 말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지만, 종일 종알거리고 소리 지르고 다닌다.

무슨 맛인지 도통 짐작이 안됐던 볶음밥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사이 아이도 그만큼 커가고 있었다. 나에게 180일은 볶음밥을 만들며, 그 밥을 먹는 아이의 모습을 머릿속에 하나 둘 소중히 넣어둘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육아휴직이 끝나더라도 가끔은 볶음밥을 해줘야겠다.

-cbs 정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