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라는 단어는 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그 두근거림의 시작은 첫사랑의 풋풋함을 연상케 하는 '핑크빛'이 아니라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두려움'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저는 새 학년이 되면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는 게 가장 싫었습니다.
낯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동안 익숙한 게 좋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하던 것을 그대로 하는 습관이 생겼고, 변화에 대한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다소 내성적인 성격 탓에 시작이라는 단어는 늘 제게 늘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언젠가부터 두려움이 아주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거나 비판해야 하는 직업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여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악착같이 덤빈 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눈치채셨다시피 저는 지금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베이징 특파원으로 내정돼 지난달부터 본사 국제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께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서울로 왔습니다.

이제 3개월 후면 14년간 활동한 대전을 떠나 중국 베이징으로 갑니다.
기쁨, 희열, 걱정, 근심, 서운, 아쉬움, 뒤숭숭….
지금 제 마음입니다.
수많은 감정이 교차합니다.
그중에서도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장 큽니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데 '취재'라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지금 가려고 하는 이 길은 제가 오랫동안 간절히 꿈꿔 온 길입니다.

그래서 설렘과 두려움을 모두 안고 이 길을 걸어가려 합니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두려움은 패키지 상품 같습니다.
오래전 사라진 열정을 되살리고 두근거리는 흥분 속에서 설레는 심장을 안고 걸어가려 합니다.
수없이 많은 발자국이 찍힌 길일지라도 나에게는 새로운 길이라고 생각하며 저만의 발자국을 새기겠다고 다짐합니다.

서울 생활도 어느덧 3주가 지났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사무실에서 영어나 중국어로 된 외국 언론사의 기사를 읽고 우리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외근 업무만 하다 보니 온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부족한 외국어 실력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언론사 입사 후 한 번도 영어책을 본 적이 없는데, 15년 만에 영어로 쓰인 글을 읽고 있습니다.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입니다.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가 없었다면, 못 해 먹겠다며 대전으로 복귀했을지도 모릅니다.
'까막눈'이 따로 없습니다.
중국에는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쳐 쓰러지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게 제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고 자칫하면 나태해질 수 있는 생활에서 초심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됐다며 '아Q의 정신적 승리법'으로 견뎌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정말 억세게 운이 좋은 놈입니다.
첫 직장인 대전일보는 제게 언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쳐줬고, 짧은 기간이지만 TV조선에서 방송 시스템도 익혔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일하고 싶었던 저의 마지막 직장 연합뉴스에서 훌륭한 선후배들을 만나 즐겁게 놀며 행복하게 일했습니다.
지금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경험을 하겠다며 수습 아닌 수습기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사스마와리'라고 해야 할까요?

이 글을 쓰는 동안 많은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라"며 끝까지 등을 두드려준 선배들과 "축하한다"며 격려해준 후배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제가 맡던 출입처를 담당하게 된 연합 선후배들에게 특히 죄송한 마음입니다.
제대로 소주 한잔 기울이지 못하고 떠나와 많이 아쉽습니다.
제가 베이징에 있는 동안 여행이든 출장이든 베이징을 찾을 일이 있다면, 꼭 연락해주세요.
여행객은 모르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으로 모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저도 수습기자의 마음으로 열심히 배우고 익혀 돌아가겠습니다.
코로나 19를 극복해 예전처럼 마스크를 벗고 생활하는 날을 기대하며, 그날까지 모두 건강 조심하세요.

-연합뉴스 한종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