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비대면 연휴를 만끽하고 있던 마지막 날 사건이 터졌다. 취업은 언제 하니, 살 좀 빼라, 결혼은 언제 하니…. ‘잔소리 폭격기’ 어르신의 지나친 관심으로 집안이 쑥대밭이 됐다.

과일 먹으러 나왔을 뿐인데 왜 저러시냐며 사촌들이 입을 삐죽 내밀고 방으로 도망쳤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지, 자기 자식들과 비교하시려 그러는지 의중을 알 수 없다.
“입이 문제지.”
거실 가운데에 드러누워 손가락질하는 당숙이 말했다.

“뭐 인마!” 하며 어르신의 목소리가 커졌다. 당숙이 다시 말했다. “트럼프가 확진이래.”
열탕과 냉탕을 오고 갔던 30초. 뉴스 속보가 전해지면서 집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트윗 대통령’으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소식은 그의 트윗을 통해 알려졌다.
전 세계가 코로나 패닉에 빠졌을 때도, 미국에서 하루에 몇 천 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도 그는 초지일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는 자신 있어 했다. 지난달 대선후보 첫 TV토론에서는 민주당 후보 바이든을 향해 “나는 마스크를 안 쓴다. 바이든은 쓴다”라고 조롱을 했다. 자기 방역에 강력한 자신감을 표출한 그는 어이없게도 며칠 만에 ‘고위험군 확진자’가 돼 있었다.

말은 곧 품격이다. 나를 드러내는 수단이고 평가받는다. 지난달 30일 실시간 순간 시청률 70%를 기록한 나훈아의 언택트 공연은 가황의 복귀 무대라는 평가에 한정되지 않았다. 코로나로 지친 국민을 위로했고 “국민을 위해 목숨 바치는 왕, 대통령을 본 적 없다”는 소신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그의 말은 유시민의 ‘김정은 계몽군주론’과 비교됐다. 누가 더 소크라테스에 가까운 사람인지 평가됐고 네티즌, 평론가들은 나훈아에게서 ‘테스형’을 보았다고 말했다.

남을 깎아내려는 사람, 상처 주려는 사람들의 말에서는 품격을 찾아볼 수 없다. 구설에 오르기 쉽고 묵직한 울림이 없다. 외면받기 쉽다. 바이든을 저격하고 방역 당국의 지침을 깡그리 무시한 트럼프가 그랬다. 조카들에게 상처를 준 집안 어르신이 그랬다. 확진자가 된 트럼프는 바이든에게 퍼부은 조롱만큼 외신, 국민들에게 되받았다. 집안 어르신은 씁쓸히 거실에 혼자 남게 됐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 속담이 있다. 화려한 언변은 중요치 않다. 말에는 억지스러움이 없어야 하고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진심이 필요하다. ‘테스형’ 나훈아가 국민을 위로했던 지난밤처럼 꾸중보다 진심 어린 위로를 기다렸을 조카들. 어르신의 이미지는 아직도 ‘잔소리 폭격기’에 머무르고 있다.

-중도일보 박솔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