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직함 뒤에 ‘님’을 붙이지 않아.”

대학교 3학년 때, 학과 행사에서 한 기자 선배를 만났습니다. 기자는 직함 뒤에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는 선배의 말이 머리를 때렸습니다.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을 지키는 기자의 모습은 뇌리에 강하게 남았습니다. 임용고시를 보고 교사가 될 생각으로 사범대에 왔는데 그 한 마디에 꿈이 바뀌었습니다.

2020년이 끝날 무렵 KBS대전 보도국에 왔습니다. 부장‘님’이 아니라 부장, 선배‘님’이 아니라 선배라고 부르는, 그토록 꿈꿔온 순간인데 이상하게 입에 붙지 않았습니다. 입사 직전까지 아나운서로 일하며 1년 반 동안 부장‘님’, 선배‘님’이라고 불러왔기 때문이겠지요. 선배도 부장도 참을성 있게 ‘님’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어느 순간 ‘님’을 붙이지 않게 됐습니다. 선배, 부장, 사장, 시장... ‘님’을 붙이면 이제 어감이 이상합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호칭뿐만이 아닙니다. 한 선배는 제게 ‘넵 병’을 고치라고 했습니다. 뭐든 좋다고 동의하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도 줄이라고 했습니다. 아나운서로 일할 땐 모든 게 다 감사했습니다. 지금은 감사할 일에 감사하고, 당연한 일은 당연한 거고, 비판할 일은 비판해야 합니다. 아나운서 시절, 프로그램 초대석에서는 게스트의 사연을 잘 듣고 시청자가 알기 쉽게 전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잘 듣기만 하면 안 됩니다. 끊임없이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되물어야 합니다.

이제 4개월 지났습니다. 지금도 기자 일을 잘 모르겠습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부끄럽습니다. ‘내가 기자 일에 대해 뭘 안다고..’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 달라졌습니다. 회사 밖 사람들에게 회사 얘기를 할 때 자연스레 부장이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제 말을 들으며 표정이 오묘해지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자는 직함 뒤에 ‘님’을 붙이지 않아.”

-한보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