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누구든지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첫 문구가 소롯하다. 지금껏 달려온 나날들을 설명하기에 이만큼 적절한 문구가 없다.

지난 120일은 기자로 다시 태어나는 리모델링 과정이었다. 필드 주변에서 눈대중으로 보는 것과 실무에 온몸으로 부딪치며 배우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어깨 너머 공부가 최고'라는 말을 맹신했건만, 결과물은 늘 김 빠진 콜라처럼 부족했다.
발전이 없다는 자괴감이 나를 집어삼킬 때면 무채색의 수중감옥에 갇혀 사념을 만지작거리곤 했다.
그러다 문득, 성장통을 겪는 사이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나, "지금도 잘 하고 있어" "건강하게, 즐겁게 해"라며 격려해주는 동료 기자들의 존재다. 이들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모여 형성된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다.

둘, 현장을 실어나르며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다. 누군가에게 물감이, 또 다른 이에겐 카메라가 있다면 참으로 다행하게도 내겐 펜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나니 가슴이 벅차 올랐다. 하고 싶었던 말들이 마구 샘솟았다. 나의 세계를 부숴 광야를 뒤흔들자는 각오로 이 시기를 좀 더 버텨내기로 했다.

앞으로 수천 겹의 껍질을 더 깨는 동안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주는 설렘이 있기에 계속 담금질하려 한다.

허물을 벗을 즈음이면 지금보다 조금은 단단해진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오늘도 출사표를 던진다. "다녀오겠습니다!"

이태민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