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바다 유리야! 여기에 바다 유리가 있었어!!!"

해변을 산책하는 데 첫째가 호들갑스럽게 외치더니 달려온다.

겨울방학을 맞아 몸부림치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든 가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예년처럼 여기저기 다니기도 어렵고...

대안으로 선택한 곳이 바닷가 옆 숙소였다.

겨울이라 인파도 적고, 식사는 음식을 포장해 숙소 안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명소를 여기저기 다니는 것은 포기하고 바다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외투를 벗어던지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파도가 밀려오면 소리를 지르며 밀려났다가 결국엔 신발도 양말도 벗고 내복은 무릎까지 걷어올린 채 물장구를 치던 아이들은 그조차도 질렸는지 허리를 굽히며 한창 무언가를 줍던 중 환호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모래 속에서 멋진 물건을 발견했다며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쳐대는데, 도대체 무슨 보물이기에 저러나 싶어 넘겨다 봤더니 깨진 소주병 조각이었다.

"이게 바로 바다유리야. 친구가 저번에 선물로 두 조각 줬는데, 여기에 진짜 많아. "

"무슨 소리야, 깨진 병조각이구만."

"엄마, 바다 유리 몰라? 요즘 핫한 인싸템이자 바다가 만든 보석, 바다 유리 말이야."

딸아이에 따르면 해변에 버린 병조각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바닷물에 의해 마모되면 동글동글하게 깎여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찬란하고 투명한 유리 조각들로 바뀌는데, 이를 바다유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해양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예 작품, 인테리어 소재 등으로 쓰일 수 있어 핫한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나 아까 그런 거 많이 봤는데 다 버렸어."

아빠의 말에 아이는 눈을 흘긴다.

우리는 딸아이의 성화에 못이겨 참이슬 조각, 백세주 조각, 하이트 조각 등을 찾느라 허리 한번 펴지 못했다.

'바다에 쓰레기 주으러 왔냐'며 혀를 끌끌 차는 할머니의 성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변 이곳저곳을 누비던 딸아이가 마침내 노다지를 발견했다.

바다유리가 무더기로 묻혀있는 광산을.

"할머니, 여기 바다유리가 수없이 많아. 누가 숨겨놓고 갔나봐!!!"라며 흥분에 찬 목소리로 외치자

할머니는 "소주병 깨진 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나 보지, 어떤 미친 놈이 그걸 숨겨놓겠느냐"며 면박을 줬지만 딸아이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진짜 그 바다유리 무덤에는 소주병 조각 뿐만 아니라 맥주병 조각과 전통주 병으로 보이는 조각까지 다양하게 묻혀 있었고 마모도도 서로 달라 어떤 것은 버린 지 얼마되지 않은 듯 아직 날이 뾰족했고 어떤 것은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은 듯 여기저기 깎여 돌처럼 동글동글했다.

게다가 묻어놓은 자리에 표식이라도 하듯 쇠 막대기까지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아마도 딸아이처럼 열심히 바다유리를 모은 누군가가 부모님의 꾸중을 듣고 어쩔 수 없이 가져가지도 못하고 묻어두었지만, 언젠가 찾으러 오겠다는 일념으로 숨겨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아이는 나름 그 중에서 투명도가 높고 마모가 심한 것들을 선별해 추렸다.

숙소로 돌아온 아이들이 바다유리와 조개, 몽돌을 분류해 놓았는데 정말로 유리조각들을 모아 투명한 병에 넣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꽤 예뻤다.

포털사이트로 검색해 본 바다 유리의 가격이 100조각에 5만원이나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뒤 생각이 바뀐 것은 절대 아니었다.

후에 이런 것을 '비치코밍'(Beach Combing, 해양 쓰레기 등을 수거해 업싸이클링함으로써 환경 보전과 예술 활동 등에 기여하는 활동)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됐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해변에 그리 오래 머물 일이 없었을 것이고, 바다유리를 재발견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관광지에 왔으니, 명소도 들르고 맛집도 가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가야지. 다짐하며 짜놓은 계획을 하나씩 그어나가며 다이나믹하게 움직였겠지.

그것도 좋지만 하루종일 허리를 굽히고 땅만 보는 일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괜찮았다.

모래사장에 앉아 하루종일 '촤르르 쏴∼'거리며 부서지는 포말을 바라보는 일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시나브로 움직이는 성게와 노는 일도... 쓰레기 아, 아니... 바다 유리 하나로 저렇게 말간 웃음을 짓는 딸들을 보는 일도 말이다.

-박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