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다고 해서 대전 근대건축물을 시에서 다 매입할 이유가 있나요?"

어떤 뜻으로 한 말인지는 충분히 안다. 마음의 소리가 그대로 튀어나왔을 거다. 사들이자니 현실성 없고 손 써봐야 눈에 띌 만한 성과가 미약한 데다, 다수가 아닌 일부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시간과 열정과 돈을 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총괄권자가 기자와 통화하며 내뱉을 말은 아니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 건물과 관련한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답답한 순간이었다.

지난해 다른 민간 소유가 된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 건물이 복원을 기초한 리모델링 절차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근대건축물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대전에서 나고 자라 단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토박이지만, 출입처로 인연을 맺기 전까지만 해도 지역 역사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떼거리'를 찾는 수준의 단순한 동기에서 취재를 시작했지만, 알면 알수록 블랙홀처럼 내 주위를 빨아들이고 있다.

대전에는 22개의 국가등록문화재가 있고, 동척도 그중 하나다. 1922년 설립된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은 과거 일본강점기 식민지 수탈의 대표기관이었다. 대전뿐 아니라 충청과 호남까지 아우르며 착취를 주도했다. 해방 이후 체신청과 대전전신전화국으로 사용되다가 1984년 민간에게 매각돼 상업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소규모 개인 주택을 빼면 공공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물이다.

대전에는 잘 알려진 옛 충남도청사를 비롯해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과 옛 조흥은행 대전지점, 한국전력공사 대전보급소 등 굵직한 근대건축물이 많다. 대부분 일본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로 대전이 중부권 도시로 오래전부터 개발과 성장을 본격화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써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역사의식 부재와 개발 논리에 사장과 훼손이 거듭되고 있다. 10여년 전 시장 출마후보자 입에서 "일제 잔재는 청산해야 한다"라며 옛 충남도청사 철거를 공약으로 내세울 정도였으니 대전시의 문화의식 부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세월동안 역사적 이슈가 여러 분야를 통해 불거지면서 시민의식은 고취됐다. 하지만 대전시의 의지는 여전히 과거를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근대건축물이 다수 남아있는 목포와 부산, 군산, 대구는 대전보다 한걸음 먼저 역사 보존과 활용에 역량을 결집해오고 있다. 필요에 따라 공공 매입도 서슴없이 결단하며 가치 되새김에 의지를 내고 있다. 이제 대전도 "역사 없는 민족은 내일이 없다"라는 말을 깊이 새겨 있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보존하고 가꿔 '문화 불모지 대전'이라는 오명을 과감히 깨부수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한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