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로 일하면서 제일 먼저 배운 유용한 지식은 글이 물과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크기의 그릇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한다. 가지를 잔뜩 쳐서 알맹이 정보만 남기면 간결한 문장이 될 수 있겠지만, 정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곁다리를 모두 삭제하다 보니 글의 매력이 사라진다.

그렇다 해서 미사여구와 묘사만 잔뜩 들어간 글은 그 글의 본질을 해치고 글 자체의 의도 또한 애매모호해진다. 어떤 색의 그릇에 물을 담느냐에 따라 물색이 달리 보이듯, 글도 마찬가지다. 편집기자는 제목을 통해 기사의 색을 정해준다. 취재기자의 의도는 ‘파랑’ 인데 내가 ‘빨강’ 제목을 달아버리면 파란색도 빨간색도 아닌 기사가 지면에 실리게 된다. 그만큼 편집기자의 책무는 막중하다.

원래도 글이 길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던 터라 지면에 기사를 입력할 때 긴 기사를 만나면 입부터 바짝바짝 말랐었는데, 글의 본질이 물과 같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에는 연거푸 물을 두세 컵씩 들이키는 일은 사라졌다. 지면 제작할 때 본문의 길이를 맞추는 일에 한세월을 보내다 보니 양질의 제목과 부제를 생각하는데 할애할 시간이 없었다. 당연히 결과물은 엉망진창. 우스꽝스럽게 허둥대는 나를 6개월이란 시간을 지도해주고 기다려주는 선배들의 인내심에 감사한 마음도 들고 한편 슬프기도 하다.

지면 제작 중 양질의 제목을 뽑지 못할 때나, 레이아웃에 골머리를 앓을 때면 이따금 선배들의 지면 제작 과정을 교과서 삼아 보고는 하는데, 제목과 부제를 보며 혼자 감탄사를 내뱉고 고개를 한참 끄덕이다가 ‘나도 꼭 써먹어 봐야지’라는 마음으로 메모장을 켜서 쌓아 둔 제목이 한 트럭이 넘어간다. 막상 실사용해 보면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애매모호한 제목을 보고 골머리를 앓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나도 언제 선배들처럼 기사에 딱 맞는 옷을 척척 입혀줄 수 있을까. 나를 만나는 기사들에 애도를 표한다.

이렇게 다양한 고민을 안겨주는 편집기자란 직업이지만, 미운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먼저 접한다는 자부심도 있고, 여러 분야 지식을 꾸준히 접하다 보니 박식해지는 느낌도 든다. 세상에 관심 많은 나에게 참 잘 어울리는 직업이란 생각도 든다.

이제 관건은 편집기자란 직업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꾸준한 사람이 될 것이다. 꾸준히 노력하고, 기사를 대할 때는 진지하게, 제목을 달 때는 누구보다 신중할 것이다. 그런 꾸준한 모습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어엿한 편집기자가 돼 있지 않을까.

안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