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재 센터장       ▲ 이정재 센터장     ▲ 이정재 센터장

<특별기고>-이정재 단국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충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센터장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어떤 이는 사람이 이성의 동물이라고도 하는데 감정을 주로 살피고 다루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우리 인간은 이성보다 감정이나 기분의 지배를 받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살다 보면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직장상사에게 칭찬을 듣거나 성과급을 받아 가장으로서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날은 기분이 “업”되어 하루 종일 피곤한 줄 모르고 일을 한다. 새로 산 휴대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지거나 나의 작은 실수로 직장 일처리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기분이 “다운”되어 기운이 빠지고 처지는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겪어 본 일일 것이다. 이렇듯 일상적으로는 어떤 선행사건이 원인이 되어 그 결과로 기분변화가 생기고 행동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렇다면 내과에서 항생제로 결핵균을 죽이고 폐결핵을 치료하는 것처럼 우울증에서도 이런 선행사건과 기분사이에 원인-결과의 관계가 확고하게 성립될 수도 있는 것일까? 진료실에서 흔히 보게 되는 오해 중 하나는 직장을 잃게 되어 심한 우울감과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음에도 “일자리를 잃게 되었는데 당연히 우울하지 그럼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어?”라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것이다.

우울감은 자연스런 감정반응이고 해결방법은 직장을 다시 찾는 것이며 약물치료를 한다고 해서 직장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치료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자식을 잃거나, 주식투자를 했는데 전 재산을 잃어서, 또는 천재지변으로 집과 가족을 모두 잃은 경우처럼 시간을 돌리지 않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우울증은 치료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정신과에서 다루는 우울증은 단순한 선행 사건과 결과로 설명을 하거나 치료적인 접근을 할 수 없다. 되돌릴 수 없는 끔찍한 사고를 겪게 되었더라도 모든 사람이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아니며 선행사건의 크기로 우울장애를 예측하는 것도 어렵다.

따라서 선행사건을 교정하는 것이 우울증 치료의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분의 변화가 생기기 전 선행사건보다도 그 사건을 경험하고 처리하는 개인의 대처방식을 개선시키고 그 사람의 성격과 환경을 평가하여 가족이나 주위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정상적인 상태로 다시 돌아가려는 힘, 즉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 있도록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와 같은 비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우울장애 치료의 핵심이다. 진료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환자들은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난 치료가 필요한 우울장애 상태가 대부분이지만 보호자 손에 이끌려온 환자나 또는 일부 보호자들이 우울감과 우울장애를 혼돈하여 병원에 와서도 치료를 거부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그럼 우울한 기분과 우울증, 즉 치료가 필요한 우울장애는 어떻게 구별할까? 치료가 필요한 우울장애는 기분 변화의 주기, 진폭의 크기(심각성) 그리고 중요한 동반증상의 유무로 구별할 수 있다.

우선, 정상적인 기분의 “업&다운”은 그 주기가 길지 않아서 하루 이틀 기분변화가 있다가 저절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뇌는 정상적으로 괴로운 일이 있어도 생존을 위해 망각의 도움을 받아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한다. 마치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휴지통을 비워 저장 공간을 확보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치료가 필요한 우울장애는 기분의 저하가 적어도 2주일 이상 지속된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동안 부정적인 생각,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둘째, 정상적인 기분변화는 그 진폭, 즉 심각성이 크지 않아 직업생활이나 가정생활, 사회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치료가 필요한 우울장애는 “업&다운”의 진폭이 커서 우울한 상태에서는 집중이 되지 않고 직장 업무에 차질이 생기거나 대인관계도 어려워져서 직업생활, 가정생활, 사회활동 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명확하다. 셋째, 동반증상의 유무로도 판단할 수 있는데 치료가 필요한 우울장애의 경우에는 불면증, 집중력저하, 불안감, 식욕저하, 허무감, 무기력감, 자살사고나 자살시도와 같은 증상이 동반된다. 특히 자살사고나 시도가 있다면 정상적인 감정 반응이라고 볼 수 없다.

우울이나 기분변화와 같은 정신건강의학과적인 문제는 다른 의학분야와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고 매스컴이나 인터넷에서 잘못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오해와 선입관으로 인해 우울장애 환자들이 치료기회를 가지지 못하거나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폐렴이나 폐결핵, 골절이 생겼을 때 병원치료를 받지 않고 의지로 해결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울장애 역시 의지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의학적 도움을 받으면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라는 인식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 신경정신의학회,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많은 기관이 정신장애에 대한 오해나 선입관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간간히 정신장애 환자들의 뉴스가 인터넷 포털에 검색어 상위순위에 오르거나 메인뉴스 화면에 나오는 경우 정신장애 환자들은 위험한 사람이고 배척할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 비춰지고 낙인효과로 인해 그런 인식개선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을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부동의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범정부적으로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언론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특히 전국 자살률 수위를 달리는 충남지역에서 정신장애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한 충남언론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