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기자, 당시 문맹률이 어느 정도였는지 아십니까? 80%나 돼요, 80%면 한자는커녕 한글도 못 읽습니다. 뭔지도 모르는 보도연맹 가입서에 도장을 찍은 겁니다. 살해당한 형무소 수감자들도 사형수는 없었습니다. 사실은 단 1명도 죽어선 안 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지난 3월 9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만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말입니다. 최대 7천여 명이 숨진 골령골.
희생자 다수가 대전형무소 수감자입니다. 전쟁 직전까지 감옥에는 4.3사건에 연루된 제주도민, 여순사건에 연루된 여수, 순천지역 주민을 비롯한 ‘정치사상범’을 포함해 모두 4,000여 명이 수감 중에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전역 등 지역 일대에서 육군본부 정보국 CIC방첩대와 경찰 사찰반의 불심검문에 걸린 보도연맹원도 골령골로 끌려가 ‘불법’으로 총살됐습니다.
얼마 전 골령골에서 1,000여 구의 유해가 발굴됐다는 소식을 뉴스 보도로 전했습니다.

그런데 보도에 달린 포털사이트 댓글에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글들이 많았습니다.
“공산주의 빨갱이 학살자를 처단한 것 아니냐”부터 “교도소 범법자와 빨갱이를 전쟁 때 풀어줘야 하냐”와 “전쟁이 원래 그런거지”까지.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09년 정부 공식보고서를 펴내며 골령골 사건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국군과 경찰이 불법으로 자국민을 ‘정치적으로 집단학살’한 것이라고 결정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일부 사람들은 7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골령골 희생자에 ‘죽어도 되는 빨갱이’라고 아주 쉽게 댓글을 씁니다.

심지어 희생자 대부분은 북한이나 공산주의에 동조한 ‘빨갱이’도 아니었습니다.
더 나아가 정부보고서에는 ‘유족들은 빨갱이 집안이라는 사회적 냉대와 손가락질로 가족 행방을 찾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우익단체로부터 재산을 빼앗기고,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박탈됐다. 심지어 가해기관인 군과 경찰에 연행돼 고문을 당했고 후유증으로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골령골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뼈저리게 느낀 것은 대한민국의 과거사 청산은 아직도 먼 일이라는 겁니다.
가해자를 추적하면서 그중 가해의 행적이 가장 질 나쁘고, 잔혹한 몇몇 사람들의 행적을 쫓았습니다. 정부보고서가 밝히지 못한 ‘감춰진 이름들’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정부 고관대작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정치인, 국무총리, 대학 설립자, 육군 장군 그리고 장관까지 자국민을 도륙하고도 처벌은커녕 훈장을 달았습니다.

과거사정리법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규정은 과거에도 지금도 없습니다.
과거사정리법의 가해자와 피해자 유족과의 화해는 아직도 말뿐입니다.
그리고 또 잔혹하게도 6.25 전쟁이 끝나고 수립된 군부정권은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유족회를 향해 연좌제로 짓밟고 또 고문을 가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국가의 가해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2016년 당시 육군본부와 대전고등검찰청이 ‘유족에 지급한 형사보상금 3,700여 만원’은 중복 지급이라는 재판 청구로 인해 지금까지 자택에 가압류가 걸려있는 상태입니다.
김동춘 전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은 ‘전환기의 역사정책 <지연된 진실규명, 더욱 지연된 후속작업>’을 통해 이 같이 밝혔습니다.

“진실규명은 중도에 그쳤고, 보상은 많은 문제를 야기했고, 가해기관의 책임을 엄중히 묻지도 진정한 사과를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과거청산이 좌파의 우파 공격행위라며 거부감을 갖고, 보수언론은 예산낭비 조직이라고 공격했다. 그중에서도 국방부와 경찰청의 태도가 우리에게 가장 실망스러웠다. 국방부는 피해자와 참전자들의 증언에 대해 희생자들이 빨치산과 좌익활동에 적극 가담한 사람들인데 이들을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할 국민으로 단정했다고 이의를 신청했다. 진실규명에 대해 검찰은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고 자신의 잘못된 기소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의사표현을 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이렇게 끝이 났고, 2기가 얼마 전 다시 출범했습니다.
뒤틀리고 왜곡된 학살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선 가야할 길이 멀어 보입니다.
회사 선배들이 ‘특집 다큐’를 끝내고 나니 속이 시원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다큐를 만들 땐 낮밤이 뒤바뀐 지리하고 멸렬한 편집과 답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취재, 전국을 떠돌며 객지에서 자던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씩 뿌연 안개가 낀 산속에 있는 것처럼 뭔가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협회보에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골령골 학살은 71년이 지난 오늘도 끝난 일이 아니어서 그런 것일까요?
글은 여기서 맺음을 하지만 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71년간 ‘감춰진 이름들’로만 남아있던 35명의 골령골 핵심 가해자를 세상에 밝힐 수 있도록 소중한 기회를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골령골 묻혀버린 진실 2부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최우수상
한국방송공사 우수프로그램상 지역부문 우수상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제6회 공정방송실천상
목요언론인클럽 2021년 2분기 이달의 기자상

-정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