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얼어붙은 땅이 녹아내리며 봄이 오나 싶었는데 그 봄을 느끼기엔 봄은 너무도 짧게 느껴진다. 봄이 부쩍 다가오나 싶더니 벌써 5월이다. 어린이날에 어버이날까지 있어서 그런지 5월 하면 가족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할 것 같은 5월. 어느 샌가 중년에 들어선 내 나이를 생각하면 아직도 철이 덜 든 것 같다가도 커가는 아이들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기다.

올해 5월은 여느 때와 달리 느껴진다고 하면 너무 감성적일까. 나이 들면서 눈물이 많아지고 감성적이 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오랫동안 함께해온 가족들과 지내야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번 5월은 1년 전 겨울 돌아가신 아버지가 유독 생각난다. 뇌종양 판정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던 아버지는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셨다. 이겨 내실거라 믿었던 내가 한심스럽고 나약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오랫동안 멍한 상태로 살았다. 웃다가도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 주책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고 시간이 약이라던 옛 어른들의 말씀처럼 조금씩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마음을 추스르고 아버지의 옛 모습을 떠올려 봤다.

어릴 적 제대로 걷지 못했던 막내 아들을 업고 산이며 바다며 많이도 다녔던 것 같다. 언젠가 아버지 지인들 가족 모임을 갔을 때 6살인 나를 업고 1시간 넘도록 산길을 오르셨다. 산 정상에 다다르자 아버지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산 정상에 올라서서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던 아버지는 나를 기어이 업고 산 정상을 오르셨다. 산 정상에서 함께 야호를 외치며 환하게 웃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렴풋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인지 아버진 내가 커서도 유독 산을 데려 가려 하셨다. 하지만 난 머리가 굵어지면서 아버지와의 산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빼기 일쑤였다. 지금은 그때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게 후회스럽기만 하다.

아버지는 간혹 취하셔서 들어오시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때면 항상 학창시절 얘기를 해주셨다. 독재에 굴복하지 말자며 학생들이 들고 일어선 3.8민주의거 얘기와 가장 친한 친구가 대한항공 폭파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 등등. 특히 3.8민주의거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셨다.

1960년 이승만 정부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대전고 학생들이 주축이 된 지역 최초의 학생운동인 3.8 민주의거에 아버지는 3학년으로 당당히 참여하셨다고 했다. 친구들과 담을 넘어 행진을 하고 독재타도를 외치다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에 의해 얼굴을 다치셨다.

그 이후 하품을 하시다가도 턱 관절이 빠지는 고질병을 얻게 되셨지만 아버진 그때 그 당시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3.8민주의거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아버진 기념관건립추진위원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아 서울과 마산 등 기존 민주화운동 기념관 등을 직접 방문해 3.8민주의거 기념관 건립에 온 힘을 기울이셨다.

무슨 일이든 열정적이셨던 아버지는 후손들이 3.8민주의거를 기억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기념관건립에 몰두했다. 자신의 머리에 암 덩어리가 커가는 줄 모를 정도로...

비록 아버지는 자신의 마지막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떠나셨다. 안타까웠고 서운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이대로 묻히는 게 아닌가 하고...

다행히 대전MBC에서 3.8민주의거를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일부 포함됐고,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아들로 출연하는 기회를 얻었다.

카메라 앞에 서면서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그 덕에 아버지의 학창시절 사진을 발견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수개월의 작업 끝에 3.8민주의거를 다룬 다큐 ‘기억의봄 3월 대전’은 지난 3월 5일 방송됐다.
‘기억의 봄 3월 대전’은 3.8 민주의거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후손들에게 의미를 되짚어보는 계기도 됐지만 나에겐 아버지를 기릴 수 있는 영상을 남겼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생전 모습을 보면서 펑펑 울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추억거리로 되새길 것이다 .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를 느끼는 5월. 소중한 가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CBS 인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