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아아아앙”
아기는 서럽게 울어댔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에서 갓 나온 초보 부모는 영문을 몰랐다. 우유를 줘도 고개를 휙 돌려버리고, 기저귀도 새 거였다. 옷 속에 머리카락 같은 게 들어가면 불편해서 우는 경우가 있다던데, 그런가? 하고 옷 속도 들춰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출산 전에 친정엄마가 애가 태어나면 왜 우는지 다 알게 된다고 하더니. 엄마가 틀렸다. 도대체 모르겠다.

남편이 유튜브를 검색해보더니 배가 아파서 우는 것 같다고 했다. 아기는 응가를 하려면 배에 힘줘야 한다는 걸 몰라서 온 몸에 힘을 주며 우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아기 발을 잡고 하늘자전거를 하듯 움직여주자 응가를 하더니 이내 편한 표정으로 잠들었다. 아니, 먹고 자고 싸는 건 본능이라더니. 먹고 자고 싸는 방법은 모른단 말이야?

아기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무지한 상태로 태어났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해나갔다. 7개월 무렵에는 아기가 낑낑대는 소리에 잠을 깨보니 아기가 침대를 잡고 서 있었다. 아기가 혼자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깜짝 놀라서 ‘아기야, 너 언제부터 이렇게 서 있었어?’ 하고 물었더니 ‘헤헤’ 웃었다. 그 이후에도 엄마 아빠가 잠든 사이에 아기는 많은 일을 했다. 일어나보니 어떤 날은 기저귀 바구니가 뒤집혀 있었고, 어떤 날은 혼자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 놀고 있었다. 부모가 자는 동안 아기가 종횡무진하는 내용을 담은 만화나 영화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아기는 부모의 예상을 뛰어넘어 성장하고 있는 듯 했다.

성장하고 있는 건 아기만은 아니었다. 아기가 세상을 배워나갈수록 지금껏 나도 보이지 않던, 혹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오래 전이라 잊고 있던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길을 열 번 가도 처음 가는 것처럼 새로울 수 있고, 흔한 돌멩이가 먹어보고 싶을 만큼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 또, 구석구석 버려진 쓰레기가 참 많다는 것. 무엇보다 길 가던 사람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도 괜찮(?)을 뿐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아는 사람처럼 말을 걸어온다는 것.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됐을 무렵에는 아동학대 여러 건이 연이어 기사화 됐다. 생후 몇 개월 된 아기가 방치된 채 숨졌다거나,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육체적, 정서적 학대를 받아 왔다는 내용이었다. 아동의 나이도, 사연도 제각각이었지만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선배를 만난 자리에서 ‘요즘 아동 학대가 너무 많은 거 같다’고 했더니 선배는 내가 엄마가 돼서 그런 거라 했다. 과거에도 아동학대는 많았고,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선배의 말을 듣고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평소에는 늘 이성적인 것만 같던 한 선배가 어느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아동학대 기사를 보고 평정심을 잃고 화를 내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을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하는 나를 보고 선배가 ‘너도 부모가 되어 보면 저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알게 될 거야’ 하고 말했었다.
선배의 말이 맞다. 이제는 아동학대 기사를 읽으면 문자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콕콕 박히는 느낌이다. 그런 날은 어쩐지 괜히 불안해져서 잠든 아기의 발을 꼭 잡고 있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이 아기를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을까? 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 아기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건 아닐까?

예전에는 적어도 내가 엄마 아빠에게 받은 것만큼 나도 내 아기에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없다.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내가 부모님에게 사랑 받은 만큼 아기에게 돌려줄 수 있고, 그 말은 곧 나의 부모님이 나를 키우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다는 뜻이었다. 성장기에 부모님이 나에게 부당하게 화를 내거나 혼내신 적이 없었는데 그건 내가 착한 딸이어서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자식의 눈높이에서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다 키워놨더니 저 잘나서 혼자 큰 줄 안다’는 엄마의 푸념도, 아기에게 괜히 화가 나거나 섭섭했다가도 “엄마”하고 웃어주면 눈 녹듯 마음이 풀어지는 것도 이제는 알게 되었지만… 그렇지만 엄마 아빠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뭐랄까.. 좀.. 그렇다.

-대전KBS 이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