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들이받을 줄도 알아야 해.”
물론 예의는 차려야 하지만, 이라고 선배는 덧붙였다.

들이받는다는 말에, 머리가 띵 했다.

나는 언론인의 꿈을 숨겨 둔 채, 특기인 일본어를 살려 일본에서 회사 생활을 했다. 첫 사회생활이었던 일본에서의 근무 기간 동안 내가 요구받은 것은, 친절함 그 자체였다. 어떠한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최대한 상냥하게,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표현을 적절히 섞어 말해야 했다. 가령 내가 화를 내야 할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그 시간 동안 그러한 태도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가족도, 친구도, 지인도 아닌, 일로 만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들이받으라니.

이 얼마나 신선한 조언인가!

이게 왜 신선한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선배님들도 많으실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 나에겐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한 가볍고도 무거웠다. 아,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나도 정당하게 그에 맞설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에 가벼운 마음이 먼저 들었고,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따라와 마음이 무거웠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 이야기의 발단이 된 사건 당시, 조금의 희망이 보였다는 것 정도일까. 수화기 너머 나에게 다짜고짜 소리치는 경찰 관계자는 나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태도였다. 보도국에서 수습생활을 막 시작한 3월 초, 처음으로 사전 취재라는 미션을 받아 경찰에 전화를 돌리던 중이었다.
난 그저 ‘안녕하세요, 대전MBC 박선진 기자입니다.’라는 인사말이 아직 채 입에 붙지도 않은 보도국 수습 2주 차의 기자였다.
‘이게 사과할 일인가? 나는 경찰 출입기자고 출입처의 번호를 받아서 정보를 물은 것뿐인데? 그것도 그저 단순 통계 관련 질문인데...’ 하는 의문과 동시에, ‘내가 잘못한 건가? 원래 이럴 땐 사과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들이 짧은 몇 초 사이에 머릿속을 빙빙 돌아다녔다. 결국 나는 이성적으로 조목조목 따져 묻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끝까지 사과는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이유 없이 소리치며 윽박지르는 이 사람한테 죄송하다는 말은, 정말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선배들에게 달려가 이 사람이 이런 이유로 화를 내더라, 하고 전했다. 선배들은 나보다 더 불같이 화를 냈다. 그것만으로도 든든했다. 한 선배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알려 주시며, 그래도 잘못한 사람처럼 사과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잘했어, 라고 말해 주셨다.

이제 수습 해제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나는, 필요 이상의 친절함은 조금 빼고 기자다움을 갖추기 위해, 또 어떠한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자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장에서 카메라가 돌아간다. 그 옆에 선 나는, 오늘도 계속해서 되새긴다.
“기자는 들이받을 줄도 알아야 해.”
-박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