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결혼 10년 차를 맞았다. 예년이라면 해외여행을 준비하며 들떠있을 테지만, 알다시피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 아쉬워 3월 말 기념일에 맞춰 강원도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일찌감치 숙소 예약을 마쳤다.
그러나 기념일이 다가오면서 낌새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1천명 안팎에 머물던 대전지역 코로나19(코로나) 확산세가 어느새 5천명, 8천명을 넘더니 급기야 여행 2주를 채 안 남기고 1만명을 돌파했다.
10년 전 결혼식 날짜를 잡고 나서 파업 출정식 일정이 잡힌 악몽이 되살아났다.
이번엔 코로나란 복병을 제대로 만난 셈이다.
여행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려고 저녁 약속은 생각도 안하고 최대한 몸을 사렸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려했던 대로 개학을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둘째 아이가 먼저 코로나에 확진됐다.
하루 뒤엔 첫째까지 양성 판정을 받았다.
다행인 건 격리기간 7일을 고려해도 여행 날짜까진 아직 여유가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는 다 같이 코로나에 걸린 뒤 빨리 회복해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둘째는 큰 탈 없이 넘어갔지만, 첫째 아이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증세가 나빴다.
입원하기 전 확진자들이 득실거리는 병원에서 반나절을 대기하고, 좁은 병실에서 나흘을 아이와 함께 지내는 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내심 이렇게 하면 코로나에 걸릴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증세가 전혀 없었다.
"설마 나도 모르게 벌써 왔다 간 건가. 내가 슈퍼항체 보유자인가"라는 누구나 한번 쯤 해본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 격리가 끝나갈 때쯤 와이프가 확진됐다.
재택근무를 마치고 출근을 하려는 계획도 잠시 미뤄졌다.
와이프 역시 격리 기간을 고려해도 여행 날짜까진 아직 3일의 여유가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조급함이 생겼다.
자칫 잘못하다가 나 때문에 여행이 취소될 수 있다는 걱정에 어떻게 해서든 빨리 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양성 판정을 받기 위해 집안에서 마스크를 벗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첫째는 내가 마실 물에 몰래 체내 분비물을 넣기까지 했다. ㅠㅠ

하루라도 빨리 격리되기 위해 오전엔 근처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저녁엔 시청 앞 선별진료소를 찾아 PCR 검사를 받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검체를 채취할 때는 상기도에 혹시라도 박혀있을 바이러스를 끄집어내기 위해 괜히 코를 더 킁킁거렸다.
드디어 목이 따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큰 기대를 하고 그날도 신속항원검사와 PCR검사를 병행했지만, 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허탈했다.
"왜 내게 확진의 영광을 주시지 않는 겁니까 코로나님ㅋ"

격리 기간을 고려해서 무사히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짜는 딱 하루 남았다.
하루라도 늦게 확진 판정을 받으면 10주년 기념 여행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3월 18일을 확진 마지노선으로 삼고 그 이후로는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파도 여행을 다니겠다는 심보였다.

정확히 여행 일주일을 남겨둔 시점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드디어 코로나에 걸렸다.
여행을 가기 바로 전날 격리에 풀리는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기쁨과 안도도 잠시... 생각보다 아팠다. ㅠㅠ
갑자기 자고 있는데 뜬금없이 오한이 찾아와 몇 시간을 덜덜 떨었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기침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오고 열도 잦았다.
아파서 여행을 못 가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몸이 회복되면서 무사히 여행을 떠났고, 3년 만에 호텔 조식을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항체를 무장했다는 자신감 덕분에 기분 좋게 현지 식당을 찾아다닐 수 있었고, 낯선 사람·지역으로부터 오는 불안감을 떨쳐 내고 마음 편히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었다.

협회보를 읽는 시점에는 조금 더 코로나에서 벗어나 예전에 누렸던 일상에 더 가까워지길 기대해본다.
-양영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