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탈고했다. 2017년 이 후 6년 만이다. 6년 만의 기사 탈고란 이례적이다. 매년 하나의 주제를 5꼭지에서 8꼭지까지 기획기사를 생산했다. 기획마다 시작과 맺음이 있었지만, 6년 동안 생산된 6개 기획은 하나로 이어진 줄기로 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길어질 줄도, 이런 주제들을 염두에 둔 것도 아니었다. 사회 흐름을 좇다 보니, 여기였을 뿐이다.

시작은 2017년 ‘4차 산업혁명’이었다. 4차 산업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익숙하면서도 생소했다. [4차 산업, 대체 뭐길래]라는 제목 아래 8꼭지의 기사를 출고했다. ❶4차 산업 어렵다고?...핵심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❷4차 산업은 어떻게 서비스되나...플랫폼 생태계 전쟁 ❸상상은 어떻게 장밋빛 현실이 될까 ❹자율주행의 딜레마...AI, 믿을 수 있을까 ❺로봇세? 자본세?...사회적 합의없이 혁명도 없다 ❻일자리 대체? 보완?...사람이 답이다 ❼저출산 고령화와 4차 산업...어떤 직업 뜰까 ❽코딩과 메이커교육 그리고 협업하는 괴짜 등이다.

4차 산업 시대 ‘공동체’와 ‘모든 생활이 곧 실험’이라는 리빙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지금도 리빙랩은 ‘지역문제 해결’ 비중이 높지만, 당시 나는 ICT와 결합한 리빙랩에 대한 관심이 컸다. ICT+리빙랩에서 파생된 빅데이터를 AI와 연계하면 우리 삶에 지대한 변화로 이어질 것이란 생각이었다. 마침 ‘대전CBS 창립 20주년 기획 공모’에 선정되면서 유럽의 리빙랩을 둘러볼 수 있었다. [동네문제부터 사회변혁까지, 리빙랩] 기획은 ❶공동체를 디자인하다...리빙랩과 자발적 참여 ❷‘건너유 프로젝트’부터 ‘빅데이터 판매’까지 ❸세계의 리빙랩들 ‘사회 변혁’을 꿈꾸다 ❹리빙랩 기반 스마트시티와 도시 재생 ❺지속 가능성과 공공의 역할 등 5꼭지의 기사로 구성됐고 별도로 30분 분량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생산했다. 섭외부터 인터뷰까지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사실 ‘선진지를 가다’ 형식으로 임했는데, 결과적으로 선진지는 우리나라였다. 귀국 후 기사 방향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기술과 툴에 이어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옮아갔다. 종말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 시장 위축 속에서 인류는 어떻게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 2019년 [기본소득 알아보기] 기획은 그렇게 시작됐다. 일자리 소멸 혹은 대체로 상징되는 노동과 소비, 생산 위축 등 경제 활동의 악순환 속에 ‘인간다움’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❶왜 기본소득인가 ❷당신은 ‘이미’ 기본소득을 받고 계십니다 ❸세계는 지금 기본소득 실험 중 ❹진보의 기본소득 보수의 기본소득 ❺기본소득, 엇갈리는 찬반의 지점들 ❻기본소득 얼마가 필요하고 어떻게 구할까 ❼기본소득은 공산주의?...“판단은 시민들의 몫”. 모두 7꼭지의 기사가 출고됐다.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한다’는 단순한 접근이었지만, 기본소득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국내외 참고 사례는 많지 않았고, ‘공짜’에 대한 인식과 재원 마련 등의 문제는 민감하고 복잡했다. 중간에 정치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관심이 많아졌지만, 그 만큼 민감한 반응들도 많아졌다.

그러는 동안 탄소중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기술적 측면과 함께 환경적 측면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다. 전 세계 공통 문제이면서 특정 분야·특정 계층만 바뀌어서는 안 될 과제다. 시민부터 기업, 정부까지 이른바 ‘대전환의 시대’를 내포한다. 2021년에 [1.5℃ 도시전환] 기획은 ❶환경·경제 재앙에서 살아남는 법 ❷탄소중립이 기후위기만? “먹고 사는 문제” ❸플라스틱 가져오면 현금드려요...“쓰레기는 돈·재활용은 놀이” ❹탄소사회, 정부와 기업·시민 역할과 ‘넷제로 생태계’ ❺넷제로+기본소득+지역화페=탄소화폐, 어때요? ❻탄소중립이면 끝?...양극화·불공정·혐오 해결 못하면 ‘반쪽짜리’ ❼대전환의 시대, 연대와 공동체 역할 중요...배려를 디자인하다. 이렇게 7꼭지로 구성됐다.

풍요로운 4차 산업 시대를 위한 준비물로 볼 수 있을까. 물질적·기술적 측면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혐오를 뛰어넘지 않고 풍요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먹고사니즘에 지친 사람들의 능력주의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들, 혐오라는 폭탄 돌리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불행일 수밖에 없다. 2020년 [혐오 리포트: 당신은 충(蟲)인가요] 기획의 출발점이다. ❶충(蟲)이 넘쳐나는 사회 ❷치킨게임, 결국 혐오만 남았다 ❸먹고사니즘과 능력주의 그리고 희생양 ❹혐오를 파는 사람들과 #StopHateforProfit ❺1인 1표 말고 1달러 1표...차별이 공정하다고? ❻혐오라는 폭탄돌리기 ❼차별금지법과 기본소득 그리고 UD 등 7꼭지다. 능력주의와 공정, 차별금지법 등 민감하고 복잡한 주제들인 만큼 준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빚처럼 가슴 한 켠에 매달린 기획은 2년이 지난 2022년 ‘마침내(?)’ 출고됐다. [혐오의 시대, 배려를 디자인하다] 기획은 ❶사람 : 배려, 상대방이 만족하는 것...품격이 되다 ❷도시: 이런 것도? 배려, 어렵지 않아요 ❸제품: 장애인이 편하면 모두가 편하다...모두를 위한 디자인 ❹정치: 배려가 실종된 정치가 혐오사회에 미치는 영향 ❺교육: 따뜻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배려를 실천해주세요 등으로 구성됐다. 배려, 특히 UD(Universal Design)를 주제로 한 5개 분야별 기사였는데, 단순명료한 주제일수록 기사 작성이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흐름을 따라 6년 동안 6개를 기획했고, 지난 6월 탈고했다. 주제는 제각각이었지만 결론은 ‘인문학과 철학’으로 중첩됐다고 감히 말하고자 한다.
지방 기자가 왜 이런 이슈를 다루는가. 질문이 적지 않다. 뭐라고 답해야 하나. 오늘에 대한 얘기도 중요하지만 내일을 얘기하는 누군가도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하는데 굳이 지역으로 선을 그을 필요가 있을까. 답이 될까. 이 주제로 기획을 마련해야 하나. 기사는 어렵다. 기획도 어렵다. 호흡도 길고 체력 소모도 상당하다. 끝을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6년이 지났다.

신석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