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짧지?” 1년간의 순환 근무를 마무리하던 지난달 가장 많이 들은 질문입니다. 다들 알고 계셨던 걸까요. 내포에서의 1년은 누구에게나 빨리 흐르나 봅니다.

지난해 10월 홍성센터 발령이 났습니다. 내포의 첫인상은 ‘오밀조밀 다 모여 있는 동네’였습니다. 순환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으로서 약간의 미화를 하자면 내포는 대학교 캠퍼스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뚜벅이에게 무척 좋은 동네지만 슬프게도 저는 급하게 집을 구하는 바람에 내포에 집을 구하지 못해 그 최대 장점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사회부 취재만 하던 저에게 내포는 신세계였습니다. 충남도청이나 충남교육청, 일선 시군 취재가 모두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보도국 막내 기자인 저는 사건·사고의 늪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잠시 경험해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출입처계의 키자니아. 뭐든지 해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건 지역의 구석구석을 볼 기회가 많았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충남 지역이 고향 이지만 학창시절 지역 곳곳을 여행한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20대는 서울에서 보냈기 때문에 지역방송국 입사 이후에야 지역에 더 애정을 갖게 된 게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그동안 가보지도 않은 채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바다는 동해바다, 섬 여행은 남해’가 정답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비록 취재를 위해서였지만 지난 1년 동안 서해안 시군과 충남 지역 곳곳을 돌아다녀 보니 참 아름답다고 느낀 곳이 많았습니다.

당진 왜목마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죽도와 원산도 바다가 얼마나 푸른지, 서산 운산면에서 보는 벚꽃은 얼마나 그림 같은지. 놀랍게도 저는 내포에 가기 전까지 하나도 몰랐는데요. 덕분에 일하러 갔지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가끔 본분을 잊고 휴대전화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바쁠 때도 있었습니다. 지역 곳곳의 아름다운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도 내포 생활의 놓칠 수 없는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내포에서는 약속이 많이 생깁니다. 누가 참 많이도 왔다 가는데 그럴 때마다 잊지 않고 환영회와 송별회를 하는 정 넘치는 동네입니다. 오찬도 많고 만찬도 많습니다. (제가 오로지 사회부 출입만 해봤다는 점을 고려해주세요) 그래서 처음에는 내포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됐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이어지는 약속에 대전에서는 집-회사만 반복하던 저는 셀럽의 삶(?)이 이런 걸까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내포에서 그렇게 사람들끼리 두루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건 어쩌면 사람이 귀해서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내포에 있는 동안 충남경찰청 홍보실에서는 계장님과 반장님, 주임님 할 것 없이 모든 직원분들이 경찰청 기자실을 자주 찾는 저연차 기자들을 ‘독수리 오형제’라 부르며 알뜰살뜰 챙겨주셨는데요. 겨우 다섯 명이 앉아서 일할 뿐이지만 기자실이 꽉 차 보기 좋다며 언제나 반겨주셨습니다.

그 따스한 분위기에 잃어버린 동아리방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만약 인원이 수십 명이었다면 독수리 오십 형제는 생길 수 없었겠죠? 마음이 편해서인지 같은 일을 해도 기분이 좋았고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내포에서의 기억 잊지 않고 저도 어디선가 누군가를 그렇게 환대해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처음 홍성에서 갈 때 무척 놀랐던 점 중 하나는 회사에서 순환근무를 하는 인력에게 주거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자비로 홍성읍에 월세를 구해 지냈는데 순환 근무 기간 동안 홍성에서 쓴 월세는 5백만 원이 넘습니다. 관리비와 대전-홍성 왕복 유류비 등을 제외한 금액입니다. 이 돈을 회사가 정한 순번에 따라 타지에서 일하는 노동자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순환근무자에게 사택이나 주거비를 지원해달라고 요구해온 지 1년 만에 사택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고 있습니다. 저의 이번 순환근무는 끝났지만, 다른 지역에서 순환 근무를 해야 하는 노동자 모두 타지에서 최소한 집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족도 친구도 없는 지역에서 회사가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인데, 어느 회사이든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진부하지만 벌써 지난 1년이 꿈처럼 느껴집니다. 좋았고 즐거웠고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홍성에서 즐거웠던 만큼 대전에서도 즐겁게 지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고, 지난 기자 생활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잘 지내고 또 만나요 내포!

kbs 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