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시절에는 1인분의 삶도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결혼한다고 하면 잔고 확인부터 하던 눈물겹던 백수 시절의 애잔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이 서른에 다행히도 밥값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준 회사의 은혜(?)를 늘 기억했습니다.

그 기억으로 힘들었던 서울에서의 수습기간을 견뎌내고 대전에 왔습니다. 수습 딱지는 뗐지만 대전에서도 수습하기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루하루 우당탕탕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슨 복인지 연합뉴스의 좋은 선배들 덕분에 낯선 대전에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상부상조하는 대전경찰청 기자실 분위기는 뜻밖의 놀라움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당탕탕 적응하며 무더운 여름을 지나 어느덧 코끝 시린 가을이 왔습니다. 사건사고도 피해가는 '노잼'인 도시라는 게 실감날 정도로 대전의 일상은 평화롭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곳이 내가 살아갈 '평화의 대전'이구나!"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현대아울렛 화재 현장에서 애송이 기자인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열심히'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빈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우당탕탕 분주하게 돌아다니기 바빴습니다. 일주일간 매일같이 현장으로 출근하면서 저는 햇볕으로 인해 한 톤 다운된 피부와 카메라로 인한 승모근을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1인분의 몫을 해내기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10년 뒤, 아니 5년 뒤의 강수환 기자도 이호진 선배처럼 이튿날 현장에 방문한 시의원들에게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셨어야죠"라는 촌철살인의 말을 던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밥값만 하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단지 밥값만 하기엔 이 직업이 주는 책임감이 평생 먹을 밥의 무게처럼 마음에 쌓이는 것 같거든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매일같이 백조처럼 우아하게,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발장구치며 고군분투하겠습니다.

강수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