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종종 밑줄을 긋는 경우가 있다.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이병주 작가의 소설<산하>에 나오는 격언이다.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이 고고학적으로 검증되면 역사가, 드러나지 않으면 신화가 된다는 말이다. 즉, 승자의 기록은 역사가 패자의 기록은 신화가 된다는 것.

그는 햇빛에 바래진 역사를 새로 쓰는 복원자라 불렸다. 문학으로 패배자들에게 발언권을 주고 결과만이 아닌 동기도 중요시해서다.

기자는 그가 말하는 문학과 비슷하다. 사실을 기록하는 직업이면서 국민의 난색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막연히 기자를 꿈꾸던 학생은 이제 새로운 꿈이 생겼다. 사실에 충실하고, 누락하는 패자의 사연을 생생히 담아내는 기자가 되겠다는 꿈.

“재밌어요”
수습기자 3개월. 어떠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느낀 점을 세세하게 표현하는 동기들 사이에서 너무 단순‧명료한 호응이라 부끄러웠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현장도, 쓰는 글마다 끝없는 수정의 축복이 내리는 기사도 아직은 이 과정이 즐겁기만 하다.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새로운 목표가 생긴 지금, 누군가는 내 기사에 밑줄을 긋고 꿈을 꾸리라.
유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