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을 하면 좋은 점이 무척이나 많다.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고 운동도 하고 그동안 같이 놀아주지 못했던 죄책감도 밤낮으로 뛰어놀면서 해소할 수 있다. 또 웃음소리 크기만큼 커져가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과도하게 표현해 행복해서 미칠 수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간혹 또는 자주 혹은 지속해서 힘든 순간들은 찾아온다. 이런 간헐적 우울감을 느낀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도 육아휴직의 가장 큰 장점일 수 있다. 아이를 대면하지 않음에도 찾아오는 우울감이 있다는 걸 이해하기까지 육아휴직을 하면서 깨달았다.

새로운 공감의 영역을 알게 된 한 가지 일화는 이렇다. 반숙 달걀 후라이에 흰쌀밥 한 공기, 거기에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는 달걀밥을 난 참 좋아했다. 어릴 적 부여 할머니 손에 자라던 시절, 짠지(김치)도 안 먹고 멀국(국물)도 안 먹는 나에게 할머니가 늘 해주셨던 음식이다. 아마 그때부터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 좋아했던 달걀밥을 이제는 썩 좋아하진 않게 됐다. 첫째 딸이 두 살이 되던 해 육아휴직에 들어가고 내가 주 양육자가 되면서부터지 않나 싶다. 육아휴직하고 아빠의 첫 다짐은 어린이집을 보내기 전 아침밥을 먹여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큰 각오와는 달리 매일 김과 달걀 그리고 죽으로 근근하게만 먹여 보냈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팩에 있는 죽은 덜어서 주고, 남은 김은 잘 밀봉해 보관하면 됐는데 남은 달걀 후라이는 항상 차갑게 식은 뒤 내 몫이 됐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집 등원을 시키고 집에 돌아와서 늘 혼자 먹는 내 아침 밥상엔 차갑게 식은 달걀이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처음엔. 전날 밤 치킨이라도 시켜 먹은 날엔 달걀밥에 치킨 살을, 보쌈을 시켜 먹은 다음 날엔 달걀밥에 고기 한 쌈을. 좋았다.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매일 먹던 내 달걀밥의 행색(!?)이 보이기 시작했다.식 어버린 남은 달걀 조각을 넣은 사실상 간장밥에 가까운 달걀밥. 그걸 아까워 우걱우걱 먹는 모습을 생각하니 우울해 보이기까지 시작한 것이다.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공감하지 못할 영역이다. 아이와 함께하지 않는 순간 오히려 찾아오는 힘듦이 있다는 걸.

남기자의 육아휴직. 기자 앞에 남(男)이 붙는 거의 유일한 상황인 것 같다. 남기자는 육아휴직 해야 한다. 쉼도 그리고 재충전도 필요하니까. 그리고 또 다른 공감의 영역도 알게 될 테니. 이제는 달걀밥이 조금씩 다시 먹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현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