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기상 후 가장 먼저 주방으로 향해 커피 머신 전원을 켠다. 초록빛 램프가 점등되면 이내 커피 머신 보일러에서 물이 끓기 시작한다. 디스플레이에 나타나는 온수와 스팀 온도가 각각 94도, 124도를 가리키면 커피 내릴 준비가 된 거다.

전자저울 위에 계량컵을 올려 영점을 맞추고 단골 카페에서 사온 원두 20g을 계량한다. 그라인더에 원두를 붓고 전원 버튼을 누르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분쇄된 원두가 계량컵에 담긴다. 이번엔 분쇄된 원두를 포터필터(커피 가루를 담는 필터)에 옮겨 담은 뒤 고르게 펴는 작업을 한다.

포터필터 안 원두 가루가 균일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커피 가루를 통과하는 물 역시 한쪽 방향으로 쏠려 커피 맛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른바 채널링 현상인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 분쇄된 원두를 평평하게 다지며 빈틈을 메운다. 마지막으로 금속 탬퍼로 분쇄된 원두를 누른 뒤 커피머신 그룹 헤드(커피가 최종 통과하는 곳)에 포터필터를 체결한다. 이제 추출 버튼을 눌러 에스프레소 40g을 추출해 마시기만 하면 된다. 매일 아침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다.

커피에 본격적으로 관심 갖게 된 건 1년 전쯤이다. 경직된 삶 가운데 커피 한잔이 주는 해이에 끌렸다. 커피를 마실 때면 잠시나마 느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으면 꼭 커피 한잔은 마시고 헤어졌다. 주말이면 맛있는 커피를 먹기 위해 다른 지역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다 이런저런 커피 장비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어느덧 홈 카페를 꾸미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존에 쓰던 커피머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최근 커피머신도 새로 들였다. 은은한 금속 재질의 머신은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다. 에스프레소를 한잔 내려 마시면 “아, 맛있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물론 내 기준이다. 커피를 내리며 잠시나마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점도 커피가 좋은 이유 중 하나다.

포터필터에서 떨어지는 에스프레소 줄기에 오롯이 집중하면 머릿속에 맴돌던 불가해한 사건이나 현상이 자연스레 사라진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지우기 위해 타인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이들도 일순간 떠나간다. 25초에서 30초 사이에 추출돼 알맞은 양의 크레마(갈색 빛 크림)를 갖춘 에스프레소는 완결성을 지닌다. 일련의 과정에 잡념이 파고들 틈은 없다.

커피를 내리는 일은 기자의 그것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일단 단기간 집중해서 좋든 싫든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럴듯한 취재 계획을 냈지만 실제로 취재해보면 온갖 변수들이 튀어나오듯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도 수많은 변수들이 따른다.

커피를 내리는 장소의 기온과 습도, 물의 경도, 원두의 볶음 정도, 분쇄된 원두의 굵기, 포터필터에 담은 원두의 양, 압력 세기 등 수없이 많은 변수가 커피 추출에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변수를 고려해 최적의 상태로 내린 커피 한잔이 주는 기쁨은 그래서 더 값지다.

취재하고 기록해 하나의 기사를 만들어냈을 때 얻는 쾌감 역시 중독적이다. 가끔은 진실을 구하려는 의지보다 세게 느껴진다. 본질을 벗어난 열정이 지나치게 앞서나갈 때면 커피 한잔을 마시며 냉정을 되찾는다. 이 또한 커피가 지닌 마력이다.

김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