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래? 워찌 여그 있남?" 한글날 연휴(안타깝게도 8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당직이었다)가 끝난 뒤 10월 10일 새벽 장거리 운전을 마치고 출근하는 길에 귓전을 파고든 정겨운 '스산'(서산이라 하면 영 맛이 안 난다) 표준어.

2005∼2006년 스태안(서산·태안)서 근무하다 떠났으니 17년 만에 다시 현지에서 만난 고등학교 선배였다. "이∼∼. 인자부터 또 스산서 근무유"(이게 말로 들려주야는디, 글로는 맛이 안 사는디)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도 과거 2년간 밴 지역 표준어가 곧바로 튀어나왔다.

반가움도 잠시, 그날 새벽 발생한 가스폭발 상가에서 테러 현장을 방불케 할 만큼 처참하게 부서진 건물 모습 사진 서너 컷을 찍는 것으로 두 번째 주재 근무가 시작됐다.

둘째날 출근지는 태안이다. 관할 지역이 서산을 중심으로 태안·당진·보령·서천까지 서해안 5개 시·군이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씩만 들러도 1주일이 금방이다. 17년 전에는 홍성·예산을 맡았는데, 이제는 보령·서천으로 바뀌어 어째 일이 더 많아진 느낌적인 느낌.

서산 숙소에서 보령시청까지 가는 데만 꼬박 1시간이 걸렸다. 내비를 찍어 보니 서천군청까지는 1시간 반이란다. 금요일 저녁 대전으로 돌아와 주말을 보내고 맞은 둘째주 월요일 새벽 운전 행선지는 당진. 장돌뱅이(역시 맛이 날라면 장똘뱅이라 쓰야는디 아숩다)가 따로 없다.

그래도 이곳에는 맛이 있다. 말맛과 사람맛. "이 차 연비는 좋은가요?" "이 눔은 지름(기름) 냄새만 맡어두 가유" 인터넷에 한때 '능력고사'가 떠돌 정도로 외지인은 영 이해하기 힘들다지만, 충청도 표준어에는 이렇게 유머가 넘친다.

유머 있는 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곳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에서는 여유가 느껴진다. '아부지∼ 돌 굴러가유∼' 식의 단순한 느림이 아니라 푸근함과 정이다. 그래서 이 지역 분위기에 젖다 보면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빠져든다. 17년 전에도 떠나오면서 석별의 술잔을 기울이다 취기와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서산 원도심과 동부시장 골목골목은 간판들만 바뀌었을 뿐 옛 모습 그대로였지만, 당시 어울렸던 형들은 이제 대부분 은퇴했다. 현지서 사귀었던 친구들은 그 사이 승진에 승진을 거듭해 읍장·면장·과장이 됐다.

여전히 정이 넘치고 유머러스한 이들과의 새로운 시간이 기대된다. 첫 근무날 대전에서 전화를 걸어온 한 선배의 "객지에서 힘들겠지만 대전에서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여유가 있을 테니 책을 옆에 두고 틈틈이 운동하라"는 조언에 "사람 돼서 갈게유" 했는데,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름 술꾼인데, "워매? 이런 시절(멍청이)" 소리를 듣고 어떻게 친구들의 술자리를 거부하겠나. 그래서 오늘도 퇴근길 발걸음은 스산의 핫플레이스 호수공원으로 향한다.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호수공원 주변을 쉼없이 걷고 달리는 이들 속에 끼어 있어야 하는데, 내 자리는 살짝 벗어난 네온사인 조명 아래다. 앞에서는 보고 싶었던 얼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정윤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