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앵커’를 보며 언론인, 구체적으로는 아나운서의 꿈을 꿨다. 뉴스를 전달하는 모습이 멋졌고, 뭔지도 모르면서 ‘말의 힘을 갖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의 지망생처럼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1년여간 신사동에서 아나운서 학원을 수강했다.

대형사 고차 시험에서 아쉽게 낙방하던 때, 비록 프리랜서이긴 했지만 KBS 울릉중계소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했다. 2013년 6월의 일이었다.

울릉중계소 사정상 아나운서는 라디오 진행 외에 PD와 작가, 기자 역할을 모두 해야 했다. 외딴 섬에서의 생활이 가끔은 지루했지만, 정말 많은 걸 깨닫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자가 더 적성에 맞는다는 판단이 섰고, 1년 반 만에 기자로 진로를 틀었다.

다시 ‘언론고시’를 준비할까 생각했지만, 앞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던 대학교 선배 조언에 실무를 배우며 ‘경력 이직’을 노려보기로 했다. 곧 경기·인천 지역의 지역지에 입사했고, 빠르게 전주MBC를 거쳐 KBS대전총국의 기자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기자로는 9년 차, 언론인으로서 첫발을 뗀 지는 벌써 만 10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앵커’직 제안은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그것도 KBS 9시 뉴스라니. ‘언젠가’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개인적인 기준으로 ‘불혹’은 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사를 쓰고 소화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쯤은 돼야 한 명의 성숙한 인간으로서 뉴스의 본질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앵커 제안을 두고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오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어떠한 이유로 내게 기회가 돌아왔든, 분에 넘치는 일이라는 건 명확했고, KBS 50주년, 대전총국 80주년의 뜻깊은 해라는 점에서 더욱 부담스럽고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내가 감히 거절하거나 재볼 자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9시 뉴스 진행을 맡게 됐고, 그 일은 생각보다도 더 떨리는 일이었다. 목소리에 괜히 힘이 들어가고, 말투는 딱딱하고, 표정은 경직됐다. 아나운서 학원에서 배운 건 어디 갔는지, 단신 기사가 많을 때는 숨이 모자라 헐떡거렸다.

집구석 어딘가에서 아나운서 학원에 다닐 때 정리해둔 노트를 찾아 처음부터 공부했다. 다행히 옆에는 국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 아나운서 손지화 선배도 있었다. 적당히 독려하면서 묻는 말에는 직언을 곧잘 해줬다. 다시 학원에 다니는 기분이었다.

양민오 국장님을 비롯해 선배들은 일단 칭찬했다. 금방 안 한다고 할까 걱정되신 걸까? 어쨌든 지적과 칭찬을 두루 듣다 보니 동기부여도 되고, 자신감과 함께 실력도 쌓여갔다. 주어진 원고를 ‘긴장하며’ 읽는 수준에서 ‘긴장하지 않고’ 읽는 수준으로, 또 ‘내용을 이해’하고 읽는 수준으로, 이해한 내용을 ‘시청자에게 잘 전달’하는 수준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다.

한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니,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방송’이 걱정된다. 기자로 맞이하는 세 번째 총선이지만, 앵커 자리에서 진행하는 선거는 완전히 ‘다른 판’이다. 하지만 지금껏 그랬듯 뉴스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료들과 힘을 합쳐 열심을 다 하면, 총선방송도, 초짜 앵커인 나의 ‘뉴스 적응기’도 성공적으로 마치리라 믿는다.

박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