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김동희 기자

편집부로 발령받은 지 10개월. 어느덧 봄이 찾아왔다. 낭만도 잠시뿐. 여름은 다시 봄을 밀어내며 신록을 낭송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뒷맛이 쓰다.

1년. 계절은 한 뼘 지나왔지만 나는 두 뼘 멀어져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신문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조직이었다. 기자란 글만 쓰는 줄 알았는데 사진기자, 교열기자, 미술기자 등 역할군이 다양했다.

수습 기간 일주일 남짓 맛본 편집의 재미를 3년이 다 되도록 잊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호기롭게 발을 담갔지만 그야말로 호되게 당했다. 매일이 전쟁 같은 하루다.

강판 1시간 전. 레이아웃도 제대로 짜지 못했는데 기사는 자비 없이 몰아친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 숙독(熟讀)도 잘 되지 않는다.

강판 15분 전.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급한 대로 리드 문장에서 키워드를 뽑아낸다. 타성에 젖은 표현으로 뒤범벅된 대장을 돌릴 때면 그 손이 심히 부끄럽다. 폭풍 같던 시간이 지나갔다.

분명 달콤한 퇴근길인데 쓴풀을 씹은 표정으로 지하철에 앉아있는 건 나뿐이다. 그런 날엔 잠도 제대로 오지 않는다. 새벽 5시. 비척비척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는다.

아이서퍼를 켜고 주요 일간지와 지방지를 주욱 훑어본다. 같은 기사, 다른 제목.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 다듬었다. 아침 밥상에 오른 건 뜨끈한 패배감이다. 이미 손을 떠나가 버린 지면을 다시 붙잡을 수 없다. 때때로 가슴이 선득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편집은 인생이다.

그날 제목에는 그날 내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더 이상 고민하기 싫다는 게으름, 한 템포 쉬어가겠다는 나태함, 이보다 더 좋은 표현은 없을 것이란 오만함까지 전부. 그렇기에 막 1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심기일전해 본다.

편집이 인생이라면 올곧은 자세로 본질을 파악하는 사람이 되자. 오늘도 난 글자들로 이뤄진 검은 우물에서 원석을 건져 올리기 위해 고투 중이다. 원석을 깎고 다듬어 멋진 보석을 만들어내리라.

생된 계절이 익어간다.

대전일보 김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