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중국 외교부 기자회견에서 한중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한종구 기자

'2021년 1월 28일 베이징 하늘 맑음'

베이징 특파원으로서 제 긴 출장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코로나19가 엄중하던 시기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방역 정책을 고수하는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걱정과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컸습니다.

김치와 한복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나라, 코로나19가 미국에서 기원했다고 하는 나라, 북한의 무력 도발에도 북한을 옹호하는 나라라는 점 등은 업무에 대한 답답함을 가중시켰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암담함, 막막함, 쓸쓸함, 외로움을 누가 알까요?

하지만 인간은 복합적 사고와 다양한 감정을 소유한 동물이라는 말처럼 설렘, 기대, 흥분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기대와 우려로 시작했지만 한때는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특파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금은 복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의 정치, 외교, 경제 등 무거운 주제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3년간 기사에 대부분 쏟아 놓고 왔습니다.

대전·세종·충남기자협회보에는 기사에 담지 못했지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중국 생활 6개월이면 중국 전체에 대해 아는 척을 하고 1년이면 자기 분야에 대해 아는 척을 하며 10년이 넘은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중한 협회보 지면에는 제가 느낀 점만 간략하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베이징 공기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상당히 좋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제 부모님은 물론 친구들 대부분이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베이징의 공기는 대전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2008년과 2022년 두 차례 올림픽을 치르면서 공장을 외곽으로 이전하고 전기차가 빠르게 보급됐기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2022년 10월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 참석에 앞서 코로나19 검사 받는 모습.

두번째는 치안이 좋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감시 카메라가 말해주듯 중국은 엄격한 통제 사회입니다.

'들킬 확률'이 높은 사회가 주는 안전감이 현지인에게는 때론 서글픔일 수 있겠지만 잠시 거쳐가는 나그네에게는 송구하게도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중국인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던 '만만디'는 옛말이라는 것도 실감했습니다.

신용카드보다 빠르고 간편한 모바일 결제, 주문하면 30분이면 도착하는 배달 시스템 등을 경험하면서 치열한 경쟁이 중국인 특유의 실용주의와 결합하면서 중국을 바꾸었구나 싶었습니다.

특파원 생활 중 가장 서글펐을 때는 2022년 3월 베이징동계패럴림픽 폐회식에서 앤드루 파슨스 국제패럴림픽위원장의 폐회사가 검열됐을 때입니다.

'평화의 수호자'라는 표현이 중국 관영 중앙방송(CCTV) 중국어 동시 통역 서비스에서 생략됐고 '평화에 대한 희망'을 언급한 대목은 다른 표현으로 대체됐습니다.

위원장은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국의 우방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 모양입니다.

2023년 5월 코로나19 발원지로 알려진 후베이성 우한을 취재할 당시 저의 이동 동선이 당국에 의해 실시간으로 파악됐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소름이 돋을 정도 입니다.

이밖에 공산당 선전 문구를 적은 대형 게시판이 가득한 티베트 라싸 도심 거리, 하루 아침에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뒤 시신 운반 차량이 꼬리를 물던 베이징 화장시설 등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가 인연을 맺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검열과 통제를 강화하는 사회가 됐다고 생각하니 절망스럽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행복했던 때는 중국인들도 저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임을 느끼고 그들의 진심어린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체제가 달라도 인간으로서의 공통점이 크다는 점을 깨달았고, 중국의 리더십과 민중을 하나로 뭉뚱그려 생각하거나 재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국이 G2가 된 이유는 공산당이 정치를 잘 해서가 아니라 수억명의 노동자가 손기술을 발휘하고 또다른 수억명의 농민공들이 헐값에 손기술을 팔았기 때문이라는 확신을 심어줬습니다.

여기에 '다른 생각'을 표현하고도 큰 무리없이 살 수 있는 '실질적 자유'가 소중하며, 우리도 그 자유를 얻은 게 그리 오래지 않았음에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수차례 했습니다.

중국 외교부 기자회견에서 한중 현안에 대해 질문을 하고 기사를 작성한 기억, 로이터·CNN·NYT 등 세계적인 언론사는 물론 신화통신·인민일보·CCTV 등 중국 매체 기자들과 수시로 소통하던 즐거움, 사랑하는 가족과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다양한 음식을 먹고 역사문화 유적을 관람한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연합뉴스 한종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