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홍성방송센터 정재훈 기자

지난해 10월, 홍성에 도착해 짐을 풀었습니다.

선배들은 떠나는 제게 “지리멸렬하게 볶아댔던 사건기자 생활은 잠시 접어두고 이제는 좀 농촌기자도 하면서 안빈낙도를 즐겨보라”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남겨주기도 했습니다.

한데, 아니더군요. 오자마자 생전 처음 듣는 럼피스킨이라는 가축병이 서산에 돌았습니다. 돌아버릴 것 같더군요. 국내에선 처음 발병이라는데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11월. 두 달이 훌쩍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12월, 겨울이 왔습니다. 홍성 그리고 충남의 겨울은 더 추웠습니다. 징글징글한 눈도 하루가 멀다고 참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생중계도 하고 고립된 마을과 눈에 파묻힌 백사장, 얼어버린 바다 위를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눈이 펑펑 내리던 1월 서천특화시장에서 큰불이 났습니다. 눈 녹는 2월에는 아파트 옹벽도 무너졌지요. 순이 싹 트는 3월에는 볕이 안 들어서 농작물에 난리가 났습니다. 4월에는 꽃이 늦게 펴 축제를 열어야 하는 지자체들이 발만 동동 굴렀죠.

곰곰이 생각했더니 이게 다 기후변화 때문인 것 같습니다. 도시에선 단어로만 다가왔던 기후변화가 농어촌에선 피부에 바로 와닿는 것 같았습니다. 이게 심해지면 심해지지 덜 해지지는 않는다니 아마 다음 홍성, 충남을 담당할 후임자들은 더 고생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렇다고 속된 말로 ‘뺑이 친 것’만은 아닙니다.

속정 깊은 충남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다 보면 “몸은 대간해도, 마음은 편혀”라는 말이 절로 납니다. 속이 헛헛하다 싶으면 어느샌가 “저녁에 뭣혀? 끼니는?”이라며 손 내밀어 주시는 좋은 분도 많더군요.

이곳저곳 다니며 시골 맛집을 찾는 것도 하나의 낙이 됐습니다. 태안 꽃게부터 서천 박대, 홍성 새우젓까지 도시에서는 못 느끼는 즐거움입니다.

이제, 반년이 지나면서 농어촌 생활도 슬슬 적응될 무렵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원래도 거뭇하던 얼굴이 이제는 새카매질 정도로 타버렸네요. 후배 촬영기자가 저보고 기자가 아니라 어민 같다고 말할 정도니, 선크림 좀 바르고 다녀야겠습니다.

KBS 정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