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기자님은 기레기 아니잖아요."

나는 대번에 얼굴을 붉혔다. 잠시 멈칫하는 순간 서로 오가는 대화 속에서 한 발짝 물러선 것처럼 이 상황 자체를 낯설게 느꼈다. 상대방은 어쩌자고 내게 이런 말을 하나. 면구스럽다는 듯 술잔을 돌리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불판에선 김이 올랐고 고기와 김치가 먹기 좋게 익어갔다. 화로가 놓인 원형식탁 두 개를 이어 붙여 긴 상을 만든 뒤 출입처 직원과 모여 앉은 저녁자리였다.

좀 드세요, 삼촌뻘 되는 상대방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얼른 드세요. 기레기. 나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엔 당혹스럽다가 조금 뒤엔 살짝 화가 났고, 분명 듣기 좋으라고 건넨 말일 텐데 그것이 왜 수치심과 닮았는지를 오래도록 떠올렸다.

저녁자리가 끝나고 나서도 그 말은 입 안에서 맴도는 가시처럼 시시때때로 신경을 건드렸다. 아마도 접속사가 문제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라는 이음말 뒤에 감춘 속엣말이 뭘까 골똘하다 보면 결국 상대방의 말을 부러 곡해할 수밖에 없게 됐으니까. 그래도 (아직은) 기레기 아니잖아요.

지면에 인쇄된 기사를 사진 파일로 저장해 한참 지나 꺼내볼 때마다 그날을 되새긴다. 청주에서 대전으로 건너오기 전의 일인 데다 일 년은 더 흘렀는데도 어젯밤 대화처럼 목소리가 선명하다.

일이 많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온갖 핑곗거리로 점철된 기사를 보면서 그날 내가 왜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웃음으로 무마했는지 상기한다.

어떤 말엔 행동으로 응답할 필요가 있다. 내겐 가볍게 지나가는 말이 될 수 없는 말. 그 말 덕분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기사를 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김민 대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