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환 기자가 강의를 하고 있는 모습.

지난 봄, '02'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서울 전화는 안 받는 게 상책이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이끌려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란다. 대뜸 강연을 제의해왔다. "네? 제가요? 왜요?" MZ스럽게 반문했다. 내가 써온 대전 전세사기 기사들을 보고 수습기자들 대상 '지역 취재' 강연을 제의한 거란다.

영광인 줄도 모르고 거절하기에 바빴다. 고작 3년 차인 애송이 기자가 누굴 가르치나 싶었다. 한참 부족한 나이기에 한사코 거절했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진. "연사들 중 기자님만 유일한 지역 기자세요". 지역 기자가 뭐라고.

강연 준비를 하면서 언시생 시절 생각이 났다. 한번은 '이렇게 기자 할 사람이 널렸는데 내가 굳이 기자를 할 필요가 있어?'라는 반항심이 들 때가 있었다. 내가 잘 쓰일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내 쓰임이 다할 곳은 서울이 아닌 우리 지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옥수수밭에서 뛰어놀며 자란 나는 빌딩 숲 커리어우먼이 부러웠던 시절이 있다. 지금은 물 잠긴 논밭을 뛰어다니는 기자가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 아닐까 싶다.

지역을 위해 쓰임 있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지방에서 은행 강도가 들어도 주요 뉴스로 다뤄지지 않는다. 전세사기가 지방에서만 일어난 일이라면 지금처럼 관심이 가져졌을까.

그런 의미로 전세사기를 취재할 때 속상했다. 수도권보다 심한 곳이 대전이었는데 정작 대전은 관심받지 못하고 있었다.

대전도 전세사기가 심하다고 알리고 싶었다. 관심 있는 만큼 보인다고 초기 전세사기특별법이 수도권 피해만 고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별법에 지역 피해자 구제는 빠져 있다는 것을 기사로 말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계속 다뤘다. 이 목소리를 담은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나의 첫 '쓰임 프로젝트'도 조금은 마무리된 모양새다.

연단에 선 애송이 기자는 수습기자들에게 지역 취재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바뀌는 건 없다. 모두가 수도권만을 이야기하고 바라볼 때, 지역의 이야기를 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게 지역 기자가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발전할 가능성이 많은 이 지역에서 앞으로도 내 쓰임이 더 많아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수환 연합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