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기자

매 주말 라디오와 노컷뉴스를 통해 연재된 <노컷이 만난 사람>. 　오랜 기간 많은 기관장과 명사, 화제의 인물들을 만났지만 정작 우리 안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오랜만에, 기자협회보를 통해 <노컷이 만난 사람>을 다시 소환했다. 초대 인물은 바로 '지영한 선배'. 　

대전CBS의 시작부터 30년을 지키신, 가족 같은 분위기로 불리는 대전CBS 안에서도 단연 '아버지'의 모습으로 떠오르는 분이다. 여러 차례 인터뷰를 고사하시던 선배는 후배의 채근에 끝내 두 손을 드셨다. 　

'대전CBS 대표 2회 역임', '38대 대전충남기자협회장 역임' 등… 기자들과 출입처에서 알고 있는 지영한 선배의 모습이다. 　

여기서부터는 모르는 이가 이제는 더 많아진 이야기일 터다. 30년 전, 기자 지영한은 대전CBS 개국요원으로서 분투 중이었다. 공교롭게 IMF가 터졌다. 　

"대전CBS는 1998년 12월 21일 문을 열었습니다. 전국 각 지역에 네트워크를 갖춘 CBS가 늦게나마 대전에도 문을 여니 모든 것이 갖춰진 채 출범했을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IMF 직후입니다. 어느 것 하나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주요 기관단체는 물론 기독교계조차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자체 독립 건물도 없어서 현재의 사옥건물을 임차해 기본적인 방송 송신시설만 마련한 뒤 첫 전파를 발사했습니다. 인력도 전국 각지에서 차출했습니다. 　출입처 기자단에 가입하지도 못했습니다. 모두 냉랭했습니다. 동료 기자들도, 출입처 공보 및 홍보담당자도. 그 찬바람은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금은 지역의 주요기관들로부터는 '그래도 CBS 노컷뉴스 같은 방송사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평가를, 동료 언론들로부터는 '시민의 알권리 충족과 지방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함께 할 수 있는 믿음직한 언론'이라는 격려를 받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때는 참 많이 싸우기도 했다"면서도, 선배는 "그때의 깊은 사랑과 지지, 후원을 잊지 않고 있다"고 하셨다. 　엄혹한 80년대가 경영학도를 기자의 길로 이끌었다.

"80년대 학번의 보통 청년들처럼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의 결과가 빚은 참사입니다. 좀 더 가까이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가 빚어내는,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용광로 속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민얼굴과 맨살의 땀과 눈물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그러다 운이 좋으면 시대의 인식 틀을 뒤바꾸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이나 이문열 작가처럼. 물론 기자 초입 재능의 한계와 아둔함에 탄식하며 절망했지만 그래도 그 젊은 시절에는 그런 결기는 있었습니다. 고지점령은 못했지만 진지방어는 성공한." 　

"자랑할 만한 후일담은 없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시지만,국가정보원을 조지고(!), 낮 뉴스에 선배의 '기자수첩'이 흘러나오면 그 주인공으로부터 전화가 바로 날아들곤 했다. 　

염홍철 전 대전시장과의 애증(?)관계 역시 잊을 수 없다. 　"지역 이슈와 민심의 향배에 민감했던 리더인데, 그런 만큼 비판적인 기사와 기자를 치열하게 사랑한 분으로 많은 기자들과 여러 아름다운 일화를 남기신 분"으로 선배는 회상했다. 　대

전국을 일군 지영한 선배는 대전국 출신의 첫 보도제작국장, 첫 대표를 맡으며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보직을 맡은 뒤부터는 대전CBS가 지역사회의 언론문화 창달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찾는 데 주력했습니다. 주요기관과 함께 다양한 협력 사업을 본격화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복지관계자를 위한 희망나눔콘서트와 교육가족을 위한 아름다운음악회 등의 행사를 기획, 연출했고요. CBS가 갖고 있는 장점인 콘서트 제작 능력, 전국 네트워크 기획행사를 활용한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들을 창출했습니다." 　

올해 초, 퇴직을 1년 남짓 남긴 시점에서의 필드 복귀는 또한 파격이었다. 화려한(?) 퇴임이 욕심나진 않으셨을까. 　

"그간 대전CBS가 키워온 역할과 기능을 앞으로 더 확장하고 고양해야 하는 만큼, 지역에서 단련된 새로운 리더십의 전진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며 선배는 겸손히 말씀하셨다. 　

다만 무려 15년 만의 복귀는 '쉽지만은 않다'. 공교롭게도 복귀하며 맡으신 '의료 분야'가 올해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30년을 차곡차곡 채우신 선배도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떨림이 있으신 모양이다. "역사와 사회의 다차원적인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사람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 현장을 떠난다는 것은, 물론 아직은 '물고기가 물을 떠날 때 어떤 느낌일까' 하는 정도의 생각입니다만 진짜 물 밖으로 나갔을 때는 두려움이나 박탈감 등등이 밀려들 텐데요. 아직 감은 오지 않습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겠죠. 그때 밥자리 피하지 마십시오." 　

선배는 "3년 정도 더 일한 뒤 큰돈을 벌 것입니다. 가장 큰 나라들을 여행할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선배가 큰돈을 버시면 선배가 사주시는 소고기를 먹으며 선배의 여행기를 들을 예정이다. 그때쯤 <노컷이 만난 사람>을 또 연재할지도 모르겠다. 　

후배들에게는 "나이 들수록 꿈을 꾸고 강해져야 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종교적 믿음을 갖는 것"이라는 당부를 남기셨다.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시냐는 질문에마저 "걸으면서 라디오 듣기가 요즘 소소한 즐거움인데, 라디오는 품격 있는 방송채널인 '레인보우(CBS 방송앱)'를 추천한다"는,뼛속까지 CBS맨인 선배. 나는 정말이지 이런 꾸준한 진심을 본 적이 없다.

김정남 대전CBS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