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현 대전일보 기자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하지만 기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미국 전역을 뒤흔든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했던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과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 그들은 정부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국민이 알아야 할 진실을 세상에 드러냈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군부 정권 시절 '보도지침'이라는 언론 통제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기자들이 있었다. 감시와 억압 속에서도 끝까지 기록을 이어갔던 이들의 모습은 내 마음을 움직였다.

한 줄의 진실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내 꿈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트로이 전쟁의 일화가 떠오른다. 10년 동안 그리스 연합군의 공격을 막아냈던 트로이가, 결국 목마 하나로 무너졌다는 이야기.

트로이의 예언자 카산드라는 목마를 들이지 말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트로이는 스스로 파멸을 불러들였다.

오늘날에도 트로이목마는 곳곳에 숨어 있다. 권력의 유혹, 편견과 혐오, 그리고 무심한 방관.

달콤하게 포장된 목마들 속에서 우리 사회는 때로 중요한 것을 놓치기도 한다.

카산드라는 자신의 경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침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처음 품었던 생각들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고, 때로는 내 글 하나가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한 변화보다 어쩌면 조용히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것을.

큰 목소리를 내기보다 작은 진심을 담고 싶다. 모두가 당연하게 지나치는 풍경 속에서, 누군가는 미처 보지 못한 진실을 찾아내고 싶다. 서

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깊게 바라보겠노라고. 그것이 다시 기자를 하게 된 작은 다짐이다.

이성현 대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