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산불 현장에서 고생하는 이주형<사진 오른쪽>기자를 위해 회사 동료들이 간식을 전달하고 있다.

국토 중앙에 위치한 대전은 기차·자동차로 2시간이면 전국 웬만한 곳은 거의 닿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본부는 대형 재난 발생 때마다 연합뉴스 전국취재팀에 1순위로 차출되는 막중한 임무를 집니다.

대전본부원으로 연말·연초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와 경북 북부권 대형 산불 현장을 발로 뛸 수 있었습니다.

35살 새해를 사흘 앞뒀던 지난해 12월 29일 일요일 오전. "하 2025년도 혼자서 맞이하네, 반박 불가 노총각 신세를 어야면 좋노∼"

침대 위에서 이불을 발로 차며 청승을 떨고 있던 무렵 항공 사고가 났다는 본부장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짐 챙길 틈도 없이 노트북과 카메라만 챙겨 들고 급히 무안으로 달려갔습니다.

9년 차 기자 짬이 있지! 그동안 겪었던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얼만데!이번에도 끄떡없을 줄 알고 자신만만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영화 속 장면보다 비현실적인 참사 현장. 비명과 오열, 슬픔으로 가득 찬 공항에서 10일간 먹고 자니 당장 몸이 아니라 마음이 축나더라고요. 그리움에 사무친 절규가 계속 귓가에 맴돌고, 꾹꾹 눌러 담은 손 편지 수백장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했던 진심이 빼곡했습니다.

광주전남 선배들은 기사 쓸 때, 밥 먹을 때, 잠깐 앉아 쉴 때마저 눈물을 떨구는 저를 보며 '쟤가 일하기 싫어 저러나' 의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3월 경북 북부권을 강타한 대형산불은 제 고향에서 벌어진 일이라 오히려 더 낯설었습니다.

안동시 전체가 화재 연기에 잠겼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들 코 앞까지 파도 같은 불길이 일렁댔습니다. 예상 못 한 확산세에 출근하던 아버지는 도로 한 가운데서 차를 버려야 했고, 어머니는 고택 앞까지 다가온 산불로 구순이 넘은 할머니를 모시고 대피했습니다.

의성군 고운사 주차장에서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기 무섭게 축대 위에 있던 고목이 '우지직 쾅' 굉음을 내지르며 제 옆을 덮쳤습니다.

코끼리가 박치기해도 멀쩡할 것 같은 아름드리가 불에 닿으면 이렇게 맥없이 부러져버린다는 걸 온 몸을 덜덜 떨며 알게 됐습니다.

비극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취재 말곤 없더라고요. 무섭기도 했지만 움츠러들긴 싫었습니다. 그래서 더 매달렸던 것 같아요.

마음이 동해서 절박하게 움직이니 취재 고비마다 조력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안 공항에서 수년간 일한 조종사, 항공업체를 단독 인터뷰할 수 있었고, 원인으로 추정됐던 공항 콘크리트 둔덕 관리와 조류충돌 실태를 선명하게 짚는 기사를 발굴했습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취재해 산불 진화 소식을 가장 먼저 전했고, 재난 속에서도 이웃사랑 정신을 보여준 값진 사연들을 여러 번 전달 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의 파견을 계기로 조금은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지던 회사와도 한결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3단 합체 로봇처럼 일사불란하게 팀을 구성하고 업무를 배분한 선배들과 잠 못 자고, 밥 못 먹어도 불평 없이 취재하고 빈틈없이 기사 송고한 후배들.

지칠 때면 어김없이 연락해 응원을 아끼지 않던 대전본부 식구들. 연합뉴스 구성원들이 좀 멋있긴 합니다.

같이 고생했던 대전 동료들이 적지 않은데, 이 자리를 빌려 이들도 모두 다 멋있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숨 쉴 틈 없는 중계로 불로부터 하회마을을 지켜낸 언론 파수꾼 KBS 한솔 기자와 수상할 정도로 긍정적인 채널A 대욱선배.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넉넉히 곁을 내주시는 연합뉴스 TV 재균·호진선배. 저는 든든한 선배들 덕분에 현장으로 가는 것이 또 즐겁습니다.

이주형 연합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