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월 된 아들은 볼 뽀뽀를 꼭 2번씩 한다. 엄마에게 했으면 아빠에게도 해주고 아빠에게 먼저 했으면 꼭 엄마를 찾아내 해주는 식이다. 뽀뽀라고 해봐야 입술 쪽 대신 배시시 웃으며 다가와 머리를 콩 부딪히는 정도다. 그래도 살포시 눈웃음을 지으며 무언가 부끄러운 것인 줄은 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떻게 엄마, 아빠를 다 챙기지?’, ‘누구 하나 서운한 줄 아나?’라는 식의 감탄이 나온다. 부모라면 누구나 겪는 ‘내 아이는 천재인가?’의 늪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럴 때면 참 행복하지만, 육아는 이렇게 앉아서 뽀뽀나 받으면 되는 일은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아이를 길러낸 선배 부모들에게 깊은 존경을 표현하며 나의 아이 기르기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내게 육아는 성실한 육체노동이다. 지난해 육아휴직 당시, 돌이 안 된 아들은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눈을 떴다. 컨디션 좋은 날은 4시 반에도 일어났다. 이때부터 아내와 나의 하루가 시작됐다.

먼저 아기 기저귀를 갈고 밀린 젖병 설거지를 했다. 만들어둔 이유식을 데우며 새로운 이유식을 만들었다. 식재료는 상하기 전 미리 다듬고 갈아 큐브 형태로 얼려두었다. 이유식 하나에 고기를 제외하고도 2~3가지가 더 들어가니까 챙겨야 할 식재료는 10가지를 훌쩍 넘었다.

이렇게 작업을 하면 다시 설거지가 한가득이다. 이러는 동안 아들은 끊임없이 울거나 보채서 한 사람은 온전히 매달려 있어야 했다. 아들을 간신히 먹이고 나면 다시 우리의 밥을 해결해야 했고 교대로 그것까지 마치면 규칙적인 아기의 변이 우리를 기다렸다. 그리고 산책까지 다녀온 뒤에는 피로가 누적된 아내와 내가 아들보다 먼저 잠들 기세였다.

하지만 아들은 쉽게 낮잠을 자주지 않았다. 종일 아들을 돌보고 다시 밤이 되면 우리는 내일 아들이 1시간만 늦게 일어나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내게 육아는 감정이 몰아치는 파도와도 같았다. 함께 짧은 여행을 다녀온 뒤 나부터 시작해 아내와 아들이 코로나에 걸렸던 적 있다. 아들의 고열에 해열제는 듣지 않았다. 차가운 수건을 최대한 가까이 놓아주며 밤새 열 보초를 섰다.

다음 날 찾아간 병원은 열 경기가 걱정된다며 곧바로 입원하자고 했다. 너무도 두꺼워 보이는 아기용 바늘을 팔에 꽂을 때 아들은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런 아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꼭 붙잡아두며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과 미안함이 밀려들었다.

1인실이 모두 사용 중인 병원에서 다인실을 쓰며 나와 아내는 추가 감염이 걱정돼 동동거렸다. 아들은 낯선 환경 탓에 병실 침대에서 끊임없이 뒤척였다. 거의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가도 열이 내려 잠이 든 아들을 보고 있자면 안도와 함께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들의 상태에 그야말로 일희일비하던 날들이었다. 나는 아들의 작은 상처에조차 지금도 무던해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돌이 훌쩍 지나고 아들은 이제 뛰어다닐 줄도 알고 단어로 말도 할 줄 안다. 가장 좋아하는 건 공룡이지만 그 말을 할 줄 몰라 악어라고 부른다. 공룡은 “고오오”, 고양이는 “위이이”, 멍멍이는 “앙앙”이라고 소리 낼 줄도 안다.

마음에 안 들면 소리를 꽥 지르기도 하고 짜증도 낸다. 도대체 언제 크나 싶던 날들 속에서도 아들은 꾸준히 자라왔나 보다. 이제는 그 성장이 조금씩 빠르고 아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 어렸을 때의 모습을 자주 찾아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속지 말자고 이 고생 또 할 수 없다며 둘째는 없다고 아내와 다짐하곤 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요즘 내 인생의 거의 전부는 아들을 키우는 데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을 쓰는 밤 깊게 잠든 아들의 얼굴을 보며 평범한 일상에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

백상현 KBS대전 기자